부동산 투기, 뿌리 뽑을 기회
부동산 투기, 뿌리 뽑을 기회
  • 전주일보
  • 승인 2021.03.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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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춘분이 지났는데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봄 날씨이니 들쑥날쑥하기 마련이건만, 마음이 편치 않으니 변덕스러운 날씨조차 밉다. 코로나 세상을 견디느라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요즘 불거진 LH투기 사건은 분노를 촉발하는 요소가 되었고 그 대상은 어정쩡한 정부와 여당 몫으로 돌아가 보선을 앞둔 여당은 코가 석 자나 빠진 듯하다.

이 나라의 투기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일제가 조선을 집어삼키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조선의 토지를 먹어 치우는 일이었다. 총독부가 나라의 땅을 일본 소유로 하고 지주들의 땅을 강제로 뺏거나 헐값으로 억지 매수하여 관리들과 일본에서 건너온 농장주에게 넘겨 토지를 지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항만과 중요도시 계획을 통해 노른자위를 확보하고 요지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투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강압에 의한 토지 정책이 제자리로 돌아갔어야 하지만, 미군정은 일제가 강제 탈취한 토지를 군정에 협조하는 친일 인사들에게 무료나 헐값에 나누어주어 이 나라 토지 불공정에 원초적 기반을 만들어놓았다. 동족에 위해를 가하고 친일한 자들이 해방 후에도 온존할 수 있었던 배경은 미군정이 그들에게 재산과 권력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역사의 전환기마다 악영향을 준 나라였다.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 군인들의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했다. 선량한 기업인과 공직자들을 부정 축재자로 몰아 뺏은 재산을 나누어주고 강남 지역을 개발하면서 군인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며 환심을 샀다. 그때 강남땅은 거의 군인들의 소유로 둔갑했다. 본격적인 땅 투기가 시작되었고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의 가치가 부질없음을 알게 했다. 한 번 투기를 잘하면 팔자를 고치는 세상이 되었다.

이른바 복부인이라는 명칭이 생겨났고 땅 투기는 능력치로 평가되었다. 번쩍번쩍하는 장신구를 주절주절 단 암퇘지 같은 여인들이 몰려다니며 땅을 보려 다녔다. 투기의 절정은 노태우 정권 때에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에 200만호를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하는 데서 이룩되었다. 몰려든 투기꾼으로 땅값이 치솟고 엄청난 차익이 세상에 알려지자 수사가 시작되어 13,000명이 입건되고 관련 공직자와 전문 투기꾼 등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쉽게 벌자, 몰려드는 투기꾼

 

이재(理財)에 눈이 밝다는 사람치고 땅이나 아파트 투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자주 이사하고 주민등록을 자주 옮기는 사람들(집이 없어서 셋집을 전전하는 경우 아닌)의 내력을 살펴보면 대부분 투기전문가이다. 남편이 힘들게 직장에 다녀 벌어오는 돈을 우습게 알 만큼 복부인들의 수입은 짭짤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동탄과 위례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어 대규모 투기가 이뤄졌다. 이에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어 투기꾼 15,000명이 입건되었다. 신도시 계획은 투기를 불러오고 국민의 위화감에 정부는 대대적인 수사를 하는 일이 거듭된 셈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하남과 과천 등 6곳에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였을 때는 투기 바람이 불지 않은 듯 조용했다. 그러다 광명과 시흥의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LH 공사 직원들의 투기가 드러났고 미묘한 시기를 타고 다시 투기 세력을 색출하라는 여론이 불같이 일기 시작했다. 이번 투기 조사는 하남과천의 투기까지 전체 공직자와 LH 직원 등 관련 단체까지 초대형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됐다.

집값이 폭등하여 서민의 가계 부담이 커지고 내 집 마련의 희망이 줄어들어 불만이 폭증하면 으레 신도시가 대책으로 나왔다. 신도시가 발표되는 시점에 벌써 투기꾼들의 인지 관련 기관의 비밀 누설인지 알 수 없지만, 투기가 몰려 떼돈을 노리는 층과 절망하는 계층의 부조화가 깊어지기만 했다. 신도시는 집값 잡기의 명약이 되지 못하는데도 14~15년마다 등장하여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번 LH 투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주택 공사와 토지 공사를 통합하여 주택계획과 실행, 토지 선정과 매입까지 모든 권한을 한 기관에 몰아준 데서 이미 씨앗이 심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들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집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두 공사의 통합은 과연 이명박다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참에 투기의 뿌리를 뽑아야

 

차근차근 벌어서는 죽을 때까지 모아야 집 한 채를 겨우 마련할까 싶은 나라, 온갖 수모를 감내하며 땀 흘려 버는 돈의 가치가 한 번의 투기로 얻는 수익과 비교조차 부끄러운 우리의 사회구조다. 자식을 낳아 길러 1%()’ 아래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에만 막대한 돈이 드는 나라다. 나를 희생하여 교육한 보람이 기껏 남의 밑에서 밥벌이를 하게 하는 정도이니 아이를 낳지 않는다.

기울어진 운동장만 아니라 세상이 온통 기울어져 있다. 경사가 심해서 낮은 쪽에 사는 인간은 죽도록 힘을 써도 높은 쪽에 오를 수 없다. 높은 쪽에 사는 족속들이 흘리는 걸 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주워 먹는 이들은 투기라는 수단을 알아도 시도조차 해볼 능력이 되지 못한다.

끝없이 치솟는 집값을 잡는 방법은 아예 투기의 기회를 없애면 된다. 아울러 임대소득자를 보호하는 알 수 없는 법도 고쳐서 임대사업을 위해 아파트를 사들이고 불로소득의 단 재미를 누리지 못해야 집값이 내린다. 임대는 공공임대로 해결할 수 있다. 수백 채의 집을 가진 자에게 온갖 특혜를 주어 임대료를 적게 받도록 한다는 발상 자체가 투기 조장이다.

모든 부동산 거래를 감시하는 기구를 두어 허위 매물, 가격 조작, 부당 거래를 막으면 집값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공공임대의 규모를 최대로 늘리고 내 집을 갖는 게 자랑이 아니라 부담이 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내 집 마련을 위해 평생을 바치지 않는 사회, 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걸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를 만들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법과 제도를 몽땅 바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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