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치우는 일
그릇 치우는 일
  • 전주일보
  • 승인 2021.03.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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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최 정 선/수필가
최 정 선/수필가

새해가 되었다고 마음 설레던 일이 엊그제인데, 어느 사이 3월을 맞는다.

정이월 다가고 3월이라고 노래하기도 하지만, 시절이 바뀌는 데 따르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남다른 때가 있다. 지내다 보면 하루하루가 키 큰 걸음으로 스쳐가는 한 때의 우연인 듯만 같기 마련이다. 하물며 요즘 같아서야 더 말할 무엇이 있을 것인가.

하지만 비록 두서없고 망연한 시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어쩌다 머릿속이 가지런해질 때면 흐트러진 집 안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도 사람 따라 사는 일이니 때때로 돌아보아야 제 모습을 간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그릇 돌보는 일도 한 몫이 된다.

눈에 보이는 살림살이만 그릇이라 할 것인가. 살아가는 데에 밥을 담고 반찬을 담는 밥그릇’ ‘반찬 그릇만 소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말하고 울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말 그릇, 웃음과 울음을 담는 웃음 그릇 울음 그릇도 잘 간수해야 한다. 우리가 밥그릇에 밥을 담아 먹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려면 말 그릇에 말을 담아 먹고, 입어야 한다. 우리에게 말 그릇이 없다면 집에서도 세상에서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집 살림살이 밥그릇들은 수도 많고 종류도 여럿이다. 밥그릇과 대접, 큰 접시 작은 접시, 유리그릇과 잔과 컵, 이것들을 크기에 따르고, 생김새를 보아서, 빛깔을 맞추고, 두껍고 얇음을 가리어 갈래를 타는 일이 결코 수월치 않다. 그릇을 늘어놓고 가르고 치우는 중에 한 무더기를 멀찌감치 따로 놓아야 되는 것이 있으니 혹, 한 곳이라도 깨지고 금이 가고 이가 빠진 것들이다.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사이 끼어있게 마련이므로 유심히 살펴 갈라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이후에는 이미 쓸모없게 되지만, 좀 더 달래어 쓴다 해도 머지않아 금간 자리가 갈라지고 멍들었던 어딘가에 작은 충격이라도 더해지면 그 길로 깨지고 말 것들이다. 어머니는 - 이 빠진 그릇을 잘못하여 상에 올리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금기하셨으니,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릇이 깨지고 금이 가고 멍이 드는 것은 모두 그릇을 다루는 질서를 예사롭게 무시하는 버릇에서 비롯된다. 평온치 못한 마음의 갈등으로 생기는 아픈 결과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매번 끼니를 챙겨야 하고 끼니가 끝나면 그릇들을 깨끗이 씻어 세우고 또는 포개어서 물기를 말려 간수할 때마다 들고 놓는 일이 힘에 겹기도 하다. 손이라도 과히 모시게 되는 날 부산하게 움직이다 보면 그릇을 꺼내고 들이는 순서조차 흐트러지면서 가지런하던 마음의 질서가 순간에 무너진다.

그때에는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그릇들은 아픈 소리를 내며 부딪는다. 위쪽에 있던 것이, 아래쪽의 것을 빼낼 때 스치며 남은 것들을 상하게 하고 부근에 놓였던 것들이 눈에 띄지 않는 상처를 입는다. 손에 들었던 그릇을 잘못하여 바닥에 떨어뜨릴 때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지는 모습은 차라리 잃는 순간의 애석함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아는 듯 모르는 듯 다친 것들이 우선은 아무렇지도 않게 간수되어 있으니, 갈라놓은 그릇 중에서 이처럼 상처받은 것들을 치우자면 겉으로는 그 말끔한 모습을 마음으로 몹시 아파하게 된다. ‘밥그릇다루는 일에 말 그릇쓰는 일인들 더더욱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울안의 내 식구들, 울 밖의 많은 이들이 다 각기 다른 용도에 소용되는 그릇들이라면 행여, 잘못 집어 떨어뜨리거나 아픈 흠집이 생길까 조심스럽다. 겹치고 세워놓은 그릇들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취하여 쓸 때마다 옆의 그릇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정성껏 다룰 일이다.

사는 일도 다르지 않다. 위와 아래, 옆을 함부로 스치고 분별없이 사방으로 부딪고 좌우로 순서 없는 갈등을 일으켜 그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과 알맞게 쓰임을 그릇되게 하는 일이 있을까 두렵다. 삼가고 삼갈 일이다.

지난 시간들, 우리 모두 간절히 간수했던 날마다 또한,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오늘, 미처 살필 겨를도 없이 맞부딪쳐 여기저기 흠결이 생긴 밥그릇, 말 그릇. 보다 더 작은 듯 보이는 갈등으로 하여 다시 쓸 수 없이 무너진 마음의 그릇들이 있었을까.

따로 챙겨 치울 일이다.

이미 한 무더기, 버리려고 갈라놓은 그릇들이 스스로도 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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