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사진첩
반쪽 사진첩
  • 전주일보
  • 승인 2021.02.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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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어렸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많은 사진을 찍어 자라온 성장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앨범으로 정리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집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그 앨범을 내놓으며 자기의 생애가 다 들어 있다고 자랑을 하곤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였다. 그 앨범을 보면 모두가 즐겁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찍은 사진뿐이었다. 그의 생애를 거의 다 담았다고 자랑을 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었고 슬프고 괴로운 일은 없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도 병원에 입원하여 몇 달 동안을 고생한 일도 있었고 가정불화로 죽고 싶은 만큼 괴롭다고 하소연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찍은 사진이나 사고를 당하였을 때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결국은 그가 모든 생애를 거의 담았다고 자랑했던 그 앨범은 반쪽 사진첩이었던 것이다.

그의 앨범을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의 사진첩도 반쪽 사진첩이요 우리 아이들의 사진첩도 반쪽 사진첩이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많은 사람의 사진첩도 반쪽 사진첩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의 반쪽만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한쪽의 힘들고 괴로웠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좋은 일만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고 좋지 않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기 위해서 아예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사진첩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생애 자체가 반쪽이 아닐까. 내 자신을 돌아보아도 반쪽인 것 같다. 어딘가에 반쪽이 또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살아올 것이 아니었는데……

그때 그 일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수많은 후회가 앞서는 것도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후회투성이인 지금의 이 푸념도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태어난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 기회를 주어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외모부터 남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멋지게 태어나고 싶다. 거기에다 우수한 두뇌와 다양한 재능과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날 수 있다면 누가 싫다 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모든 조건을 그대로 하여 다시 태어나라 한다 해도 감지덕지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과는 다르게 살아갈 것이다. 인생의 길도 다른 길을 선택하고 내가 쏟아부은 노력도 다르게 할 것이다. 아니, 내가 이루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들 때에는 목숨을 걸고 죽도록 노력해 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상받고 싶은 것은 인생의 절정기였던 청소년 시절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더듬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물론 손을 들고 일어서서 책을 읽어보지도 못하였다.

제일 괴로운 것은 영어 시간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전 학생을 차례차례 일어서서 책을 읽도록 했다. 사실은 술술 잘 읽을 수 있었지만 나는 늘 더듬거려 혼이 나곤 했다.

그것이 나의 학창 시절을 다 지배해 버렸다. 나는 갑갑하고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말 더듬는 버릇은 나의 인생을 계속해서 지배하면서 인생길도 바꾸어 놓았다. 내가 그 시절에 말만 더듬지 않았더라도 나의 인생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인생의 반쪽.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좀 더 큰 뜻을 가지고 용기 있고 의지력 있게 사는가 싶게 살 수 있었던 다른 쪽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나는 안다. 한 번 지나가 버린 세월은 다시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번 살아온 인생을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을. 못생겼어도 내 몸이 내 것이듯이 내 인생도 내 것이다. 아무도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이제 남은 세월이 많지 않다. 지금까지의 그 정력으로 일을 할 수도 없다. 다만 좋은 시절, 많은 세월이 가버렸지만 남은 세월이나마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하여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그 반쪽을 들여다볼 수라도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내 자신을 채근해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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