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용안생태습지공원
익산 용안생태습지공원
  • 전주일보
  • 승인 2021.02.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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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승 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박 승 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익산 용안생태습지공원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안에서 바라본 겨울산은 속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소나무, 떡갈나무 심지어 명감나무, 찔레나무까지 각자 자기정체성을 적나라하게 외치는 듯 보였다. 찔레나무에 달린 빨간 열매를 쪼느라 뱁새, 참새가 분주하다. 푸르름 하나로 일색인 여름산과 다른 겨울산의 쓸쓸하되 각자 당당한 풍경이 아닌가 싶다.

금강은 전북 장수군 수분리에서 발원하여 진안고원과 덕유산 지역에서 흘러나온 지류들을   모아모아 공주ㆍ부여와 익산을 거쳐 군산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란다. 용안생태습지공원은 금강하류 익산 용안면 난포리 일원에 20만평 규모로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 옆에는 공원의 몇배에 해당할 만큼의 갈대숲(?)이 펼쳐져 있었다. 내륙의 건조하고 딱딱한 것들이 골골 여기저기 흐르고 흘려 말랑말랑하게 된 곳이 습지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습지는 땅과 물의 성질이 융합된 곳이니 생태적, 환경적 특별함이 있는 곳이리라.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형형색색의 바람개비들이 빙글빙글 반겨주었다. 겨울, 강변, 토요일 아침의 공원은 바람개비만이 저 혼자 분주했다.

공원은 억새인지 갈대인지 온통 하늘하늘거린다. 하늘하늘 거리는 그 속으로 빠지듯 걸어   들어갔다. 초의선사는 차를 마실 때 손님이 많으면 소란스러우니(客衆則暄) 고상함을 찾을 수 없다(暄則雅趣索然)고 했는데 걷기도 그러한 것 같다. 홀로 걷는 지금 분명 고상함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온다. 바람보다 먼저 억새들이 눕는다. 바람을 등지지 않고 굳굳이 거슬러 걸어갔다. 귀가 얼얼해 지고 콧물이 나왔다. 그래도 바람을 등뒤로 보내며 계속 걸었다. 무언가에 맞선다는 것은 내가 아직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 이리라. 바람과 맞서 걷는 지금, 여전히 나는 아직 젊음이다.

30분쯤 걸었을까 갈대와 억새에 대해 설명한 안내판이 보였다. “갈대는 습지나 물가에서 자라며 억새는 산이나 뭍에서 자란다. 갈대는 고동색이나 갈색을 띠며 억새는 은빛이나 흰색이다. 억새는 잎에 중륵(잎 가운데의 두꺼운 심)이 있고, 갈대는 중륵이 없다. 억새는 줄기에 마디가 없고, 갈대는 마디가 있다.” 안내판을 다 읽었는데도 걷는 내내 펼쳐진 그것들이 갈대인지 억새인지 잘 모르겠다. 가면서 네이버에게 물어보고 나름 정리를 해본다. “억새는 은빛이나 흰색의 가지런한 머리를 가졌다. 깔끔한 여자느낌! 반면, 갈대는 갈색의 덥수룩한 머리를 가졌다. 부스스한 남자느낌!” 이렇게 해서 오늘 또 하나를 배운다.

1시간경 걷고나니 누워 하늘을 보고 싶었다. 초가지붕의 정자에 누워 푸른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을 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이 처마를 지나 쏜살같이 내 얼굴로 쏟아진다. 핸드폰에서 라디오를 켜니 이승철의 ‘아마추어’가 흘러나온다. “아직 모르는게 많아 내세울 것 없는 실수투성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그냥 즐기는 거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보기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서 모두가 아마추어야.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길을 찾아 내 꿈을 찾아서 나의 길을 가면 언젠가 꿈이 나를 기다리겠지”

한참을 누워 흥얼거리다 공원옆에 붙어있는 성당포구로 향했다. 
고려때부터 조선후기까지 세곡을 관장하던 漕倉이 있었던 곳으로 漕運船이 금강을 타고 한양으로 분주히 오간 곳이었다. 그 때의 분주함이 그리운지 마을엔 수백년은 족히 먹었음직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여섯 명이 두팔 벌려야 다을 것 같은  나무엔 금줄이 쳐져 있다. 漕運船의 무사항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나보다. 참 귀한 풍경이고 전통이다. 나도 모르게 두손 모아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건강하세요. 저희도 건강하게 해 주시고요’

땅이 물이되고 물이 땅이되는 습지의 包容을 알고, 더불어 함께하며 지반의 유실을 막는 억새와 갈대의 協同을 알고, 한방울 두방울이 모이고 모여 바다로 나가는 강의 進取를 알기에 이만한 곳이 또 어디있을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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