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확찐자야?
엄마! 확찐자야?
  • 전주일보
  • 승인 2021.01.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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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숙/수필가
김 영 숙/수필가

좋못사가 뭐야? 솔까말은 또 뭐고?" 아침부터 지인이 전화하더니 무작정 묻는다. “여러분! 좋못사!” 내가 카카오톡 단체 방에서 딸이랑 대화하면서 습득한 신조어를 올려놓았더니 눈치 빠른 한 분이 솔까말 우리가 이런 말 써도 되나 몰라요라며 우려의 답글을 달았는데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전화했노라 했다. 좋못사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의 줄임말이고,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라는 줄임말의 신조어들이니 육십을 바라보는 우리가 모르는 건 당연하다.

신조어(新造語)는 새로 만들거나 생겨난 말 또는 새로 귀화한 외래어를 말하는데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신조어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중 일부는 표준어로 인정되어 이후 사전에 등재되기도 하지만, 유행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러니 너무 불편해하거나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80·90년대 등장했던 혁신적인 기기인 이른바 '삐삐'를 사용하던 시절, 처음에는 무선호출기 기능으로만 썼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숫자를 조합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나 역시 신혼 시절 남편의 삐삐로 8282, 045, 175, 5959, 같은 숫자를 자주 썼다. 8282는 빨리빨리 오라는, 045는 빵 사 오라는, 175는 일찍 오라는 의미였으며 5959는 칭찬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2,000년대에 와서는 함축된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방가방가', '담탱' ’귀차니즘뭥미’,‘우왕짱같이 지금 보면 다소 우스운 언어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이는 기존의 반듯했던 언어의 규칙이 젊은 세대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라며 우려했다. 자판을 이용해 소통하다 보니, 삐삐 시대와는 달리 숫자가 아닌 한글 그 자체를 입력할 수 있었기에 많은 신조가 늘어갔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 언론 보도에서는 언어공해다.” “언어순화 운동 캠페인을 해야 한다.” 주장하거나, 미래에는 통신언어 번역사가 유망 직업으로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등 웃지 못 할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지금도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도 놀랄 만큼 우리의 언어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줄임말이 넘쳐난다. 10대들은 거의 모든 문장에 줄임말을 섞어 쓰다시피 한다. '생선(생일선물)', '문상(문화상품권)'처럼 첫음절을 따서 줄이다가 요즘은 ㅈㅅㅈㅅ(죄송죄송), ㄱㅅ(감사)처럼 초성 단위로 압축하고 있다.

대체로 중년 세대쯤 되면 젊은 세대들과 대화는 쉽지 않다. 부모들은 대화를 흉계로 착각하거나 아이들은 세대 차이를 들며 대화를 꺼리는 경우다. 그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흉계보다는 소통하려면 우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주로 쓰는 언어를 알고 이해해야 그들과의 대회가 가능하다. 나는 이러한 염려를 자녀들과의 대화로 조금씩 해소해보려고 노력 중인데 신조어를 활용하기도 한다. “유미야! 요즘 엄마는 코로나19 때문에 야외 활동도 못 하고 헬스장도 못 다니니 살만 자꾸 쪄서 걱정이다.” 무심한 듯 문자를 보냈더니 딸이 즉시 답장을 했다. "! 울엄마 확찐자야? 그래도 나에게는 세절예 인걸요뭐 이정도야 이제는 농담 삼아 지인들과 주고받던 말이니 알아듣고 맞장구칠 수 있다. 확찐자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인한 자가 격리 및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한 실내 생활이 길어지자, 활동량 감소로 인한 체중이 늘어 살이 확 찐 사람을 말하는 표현한 신조어요, 세절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이라는 줄임말이다.

이렇듯 나 역시 자녀와 소통한다는 핑계로 신조어를 쓰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딸은 엄마와 대화하면 재미있다며 엄지척을 해준다. 그 칭찬에 힘입어 얼마 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좋픈날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발표했다. 세상은 변하는데 기성세대만 그대로 있다면 뒷방 늙은이 신세 취급받는 세상 아니던가. 이런 내 주장이 어쩌면 반맞반틀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세편살 가끔은 시대적 흐름에 감성 맡기며 산다고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다만 세대와 입장을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진정한 신조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좋픈날: 좋은데 슬픈 날

*반맞반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복세편살: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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