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태조암
완주 태조암
  • 전주일보
  • 승인 2020.12.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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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승 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박 승 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금요일엔 서울에서 아내가 내려오곤 한다. 천둥번개 쳤던 젊은 날을 지나와서 일까, 기다리는 내 마음에 설레임이 있어 좋다.

이날치의 노래, ‘범 내려온다’의 자라 신세였으면 어떨뻔 했는가 ?
“범 내려온다. ~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

토요일 아침 10월의 단풍을 적시는 가랑비가 내렸다. 아내와 함께 완주 위봉산성 주위를 걷기로 했다. 위봉산성은 조선 태조의 어진(왕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봉안하기 위해 축성한 산성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전주 경기전에 있던 태조의 어진을 숨겼던 곳이 위봉산성이라는 말도 들었었다. 그 말들을 들으며 ‘초상화 하나 보관하기 위해 산성이라니’, ‘나랏님의 초상화가 백성들의 품 속에 있어야지 백성들을 피해 깊은 산속이라니’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보고 싶었다.

위봉산성은 새로이 축조되어 있었다. 홍예문(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에서 시작된 성벽이 뒷산 숲을 헤치며 등성이를 기어오르고 중간에 소나무 한그루가 돋으라져 있었다. 성벽이 아니라 성벽 위 그 소나무가 위봉산성의 옛 정취를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예문 앞에는 BTS가 다녀갔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평범함이 비범함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특별할 것 없던 공간이 BTS로 인해 갑자기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스토리의 힘인가 보다.

안내판에는 산길을 따라 오르면 태조암과 되실봉이 있다고 쓰여 있다. 태조암? 태조 이성계와 관련있는 큰 돌이 있나 생각하고 계속 오르기로 했다. 좌우 떡갈나무와 소나무 숲을 지나 30분쯤 오르니 대나무 숲이 보였다.

비에 젖은 대나무는 유난히 푸르러 좋았다. 수십 발짝 더 나아가니 기와지붕으로 된 암자가 있었다. 처마끝 풍경소리를 들으며 주저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큰 키에 바짝 마른 스님이 “들어와 차 한잔 하세요”라며 손짓을 하신다. 

방안에는 세 분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솔의 곧음과 달의 은은한 빛남을 보유한 송월 스님, 밝은 웃음소리와 정연한 말을 가진 무애심 보살, 교직을 정년퇴직하고 위봉사 문화지킴이로 계신 김 선생님.

스님과 보살님은 불교, 교장 선생님은 기독교, 저희 부부는 천주교, 3대 종교가 아무런 경계없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글을 쓰며 생각하니 그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유쾌하고 재미있었던 건 분명한데... 저 멀리 푸른 하늘과 그 아래 겹겹이 펼쳐진 산, 비에 젖은 단풍, 정갈한 태조암 그리고 그속에 좋은 사람들. 이 풍경을 마음에 담느라 네다섯시간 나눈 이야기는 담지 못했나 보다.

누군가 “생각에도 연쇄반응이 있다”고 했는데 분명히 그럴 것 같다. 이제 다시 가을이 오면 나는 잊지 않고 태조암이 생각날 것이고, 태조암이 생각나면 그 때의 그 단풍과 그 때의 그 사람들과 그 때의 그 安穩한 공기와 풍경들이 생각날 것 같다. 

‘유쾌하고 善한 말들이 오가면 공간이 이리 따뜻해 지는 구나. 비에 젖으면 단풍은 더욱 선명해 지고 그래서 더욱 처연하고 아름다워 지는 구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는 放下着이 이런 거구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는 구나.’

마음이 虛하고 몸이 지칠 때 태조암에 가보시라. 암자 마루에 앉으면 산 뒤에 산, 그 산 뒤에 산과 하늘 그 허허한 푸르름에 몸과 마음을 맡겨 보시라. 태조암이 주는 깊은 고요함에, 송월 스님이 주는 맑은 말씀에 위로와 힘을 얻을 것이다. 지친 그대 마음에 봄이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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