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잎이 말을 걸어오는 공원에서
마른 잎이 말을 걸어오는 공원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20.12.0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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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고 운/ 수필가
김 고 운/ 수필가

사그락, 사각사각, ~. 메마른 낙엽이 휘도는 바람에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며 비명을 지른다. 마치 바람이 억지로 소멸의 길로 데려가는데 낙엽은 가고 싶지 않아 앙버티며 내는 소리이다. 울긋불긋 한껏 치장했던 색깔조차 바래서 갈잎으로 변했다. 군데군데 찢겨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해서 이제 바스러져 흙으로 돌아가기 직전이다. 겨울 언저리에 부는 바람을 견디기 버겁다는 신음이다.

가을은 소멸을 앞둔 이별의 시간이 흐르는 때다. 노란 은행잎, 울긋불긋 치장한 듯 고와 보이는 가을 잎의 색은 잎이 모아 줄기에 보내려던 영양소가 떨켜에 막혀 가지 못해 생긴 변색이라고 한다. 잎의 사랑이 나무에 전해지지 못한 아픈 상처가 사람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는 슬픔의 현장이다. 그 슬픔과 회한이 갈바람에 날려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고 메마른 갈잎들이 바람에 쓸리며 마지막 길을 슬퍼하는 늦가을이다.

어쩌다 늦게까지 떨어지지 않은 벚나무 잎 한 장이 매달려 부는 바람에 파르르 떤다. 다른 나무들은 이미 모두 나목이 된 지 오래다. 무엇을 못 잊어 밀어내는 떨켜를 붙들고 애달픈 몸부림을 하는가? 이미 곱던 색도 잃고 갈색마저 바래고 비틀려 구멍이 숭숭 뚫린 몸으로 바람을 이겨내려 하는지 안쓰럽다.

다른 벚나무들은 모두 가지만 앙상한데 병든 잎 한 장이 공원 모퉁이에서 무슨 미련이 남아 버둥질하듯 매달려 있을까? 이미 생의 미련조차 거의 지워질 만큼 잎맥만 남은 몸으로 바람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하는가. 어쩌면 저 벚 잎도 제대로 자라서 역할을 하기 전에 몹쓸 벌레에 먹혀 구멍이 뚫리고 병이 들었던 것은 아닐까?

잎이 제대로 피어 열심히 햇볕과 바람을 모아 영양소를 만들어 나무에 보내주지 못한 아픔이 깊어 차마 떨켜를 붙들고 놓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구멍이 숭숭 뚫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한이 남아 나무를 떠나지 못하고 빈 몸이라도 매달려 아픔을 삭이고 있는 건 아닌지.

 

5년 전 내 곁을 떠난 아내, 곱던 모습이 윤곽마저 뒤틀려 알아보기 어려운 모습이 되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였고 막내인 아들이 성가를 하지 않은 걸 늘 마음 아파하던 병상의 그녀가 파르르 떠는 잎에 오버랩해 다가섰다.

발병 후 15년을 함께 매달려 삶의 끈을 붙잡고 통곡하고 위로하며 지낸 세월, 그녀가 앓은 뇌병변 소뇌 위축이라는 이름의 고통을 나눠 갖겠다고 보듬었지만, 외려 그녀의 아픔에 내 아픔까지 더해 곱이 되었을 것이다. 10년 가까운 세월,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었던 그녀와 나눈 이야기는 책을 만들어도 여러 권이 되었지 싶다.

초기에 말을 할 수 있었던 시기에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닥친 엄청난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온갖 병원과 치료수단을 찾아다니며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인하고 거부하려 애를 썼다. 내 역할은 그녀를 차에 태워 각지를 누비며 휠체어를 밀어 되지 않을 희망으로 속여 돈을 빼앗는 인간들 앞에 데려가는 일이었다. 위로도 설득도 할 수 없던 초기에 그녀가 하는 말은 분노와 원망뿐이었다.

잘못은 다 내 차지였고 조금 더 편안하게 살도록 하지 못한 책임도 내 것이었다. 병원에서 보호자 난에 서명하면서 내가 과연 보호자로 역할을 다했는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늘 내 취미와 즐거움을 향해 시선이 돌려져 있었던 잘못도 원인이 되었고 그녀의 마음을 다 열어 내 가슴에 끌어안지 못한 부실한 남편이었음을 알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점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내는 가슴을 열기 시작했다. 소리는 없고 눈을 깜박여서 나누는 대화, 글자판을 만들어 말머리를 시작하면 내가 스무고개 하듯 물어가며 눈을 깜박이거나 눈동자를 좌우로 돌리는 응답형식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머릿속의 생각은 정상이었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기능도 정상이었던 그녀의 가슴 속에 든 말을 끄집어내는 내 기술도 점점 늘어갔다.

그녀의 생각 범주에 내 생각을 밀어 넣어 교감할 수 있게 되자 대화가 훨씬 쉬워졌다. 어느덧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가 동화하게 되어 내 입에서 그녀의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말이 틀리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여 아니라고 했고 다시 고쳐 말하면 눈을 깜박거려 옳다는 사인을 해왔다. 신통하게 알아맞힐 때는 눈을 오래 감았다가 뜨면서 깊이 공감하는 뜻을 보였다.

대화를 시작할 때 말머리만 나오면 그걸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고 내게 하고 싶었던 온갖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았다. 가슴을 열어 모든 것을 드러내면서 내가 모르던 일과 감정들이 여과 없이 전해왔다. 그런 모든 일의 대부분이 나로 인한 것이었음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과 후회가 밀물처럼 내게 몰아쳤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이야기 가운데 내가 알지 못하던 모든 것을 고해(告解)하듯 풀어냈다. 그 일생에서 내가 차지한 비중이 얼마였는지,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남김없이 다 쏟아냈다. 한 여자의 한 갑자(甲子) 넘는 세월을 차근차근 풀어내는 작업을 눈짓으로만 거니채어 거의 다 들었던 어느 해 1020, 내가 고령에 문학기행을 갔던 날 오후에 마지막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홀연히 돌아갔다.

 

그녀의 육신은 처음처럼 다시 흩어져 원소로 돌아갔다. 흩어진 원소는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내 꿈에 들어와서 아프지 않은 건강한 몸으로 말을 하고 품에 안기기도 한다. 그녀가 떠난 가을이면 자주 꿈에 찾아와 곁에 있다가 어느 결에 잠에서 깨면 날 허전하게 한다. 메마른 갈잎처럼 말라비틀어진 육신을 벗고 홀연히 우주 속의 원소로 돌아간 그녀는 오늘도 갈바람에 쓸리는 마른 잎의 몸을 빌려 내게 말을 대신해달라고 조른다. 눈을 깜박거리는 대신 바람에 까딱거리는 마른 잎의 몸짓으로 말을 걸어오는 그녀다.

아내가 떠나고 내 가을은 온통 그녀가 차지했다. 떨어져 구르는 낙엽, 앙상한 가지와 스산한 바람이 모두 그녀와 닿아 있다. 그녀가 떠난 뒤, 가을은 건너뛰었으면 싶도록 외롭고 슬픈 계절이 되었다. 그래도 내일 아침에는 두툼하게 입고 공원에 가서 까닥거리는 잎을 보며 말을 나누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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