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변방 아닌 전라북도로 일어서자
호남의 변방 아닌 전라북도로 일어서자
  • 신영배
  • 승인 2020.11.11 15: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영배
신영배

11월 중순, 일선 자치단체의 내년도 국가예산 확보를 위한 발걸음이 분주한 시기다. 국회도 지난 9일부터 내년도 예산심사를 위해 예산소위원회 구성을 마쳤다. 본지는 지난 9일 자 머릿기사로 내년 전북 예산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더민주당이 예결소위원회에 전북출신 의원을 추천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10일자 사설에서 전북이 처한 현실과 민주당의 남도 편향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을 실었다. 이후 예결소위 참여 의원 명단에 전북 출신 윤준병 의원이 포함됐다.  

소위에 참여한다 해서 덩치 큰 사업을 끌어올 수 있는 건 아니며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전북몫의 사업예산을 지키거나 자투리를 주워 끼워 넣는 정도의 득은 볼 수 있다. 문제는 광주 · 전남이 걸핏하면 전북을 밀어내려는 불쾌한 일이 수시로 드러나는 일이다. 그들은 여태 호남이라는 명목으로 큰 덩어리를 가져와서 대부분을 자기들이 차지하고 전북에는 떡고물 정도를 떼어주는 식으로 알 속만 빼먹었다그런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그동안 전북은 그나마 주는 걸 고맙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냥 덥석덥석 받아 먹었다.

남도 억척에 다 내준 전북 양반들

생각해보면 우리 전북 사람들은 너무 온순하다. 좋은 말로는 양반이다. 하지만 달리 표현하면 무능하다는 뜻으로 간주할 수 있다. 지난날 전라감영이 위치하고 있던 전주는 전남북과 제주를 관할하는 중심지였다. 해방 후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전주에는 전라도 지역을 아우르는 정부기관이 모두 있었다. 그때 광주와 전남 사람들은 도시가 발전하려면 인구가 많아야 한다는 걸 알았는지, 전주에 있는 정부기관들을 하나둘씩 야금야금 광주로 끌어가기 시작했다.

해방 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집이나 부동산을 거래하는 단위는 쌀이었다. 걸핏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화폐보다 쌀로 계산하면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 쌀이 모여 있던 전북에는, ()가 집중되어 별로 아쉬울 것이 없던 전북 사람들은 정부기관이 자꾸만 광주로 넘어가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영남지역에 치중한 산업화 과정에서 전북은 소외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농사는 품삯도 못 버는 적자로 변했으며 서울과 울산과 포항 등 공업지역으로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전주는 60만 인구의 중소도시로 전락했다. 반면 같은 호남권이었던 광주는 인구수 150만여명을 자랑하는 광역시로 발전하며 전주에 있던 정부기관을 모조리 가져갔다.

전북에 유일하게 남은 정부기관은 익산에 있는 국토관리청뿐이다. 그 국토관리청 또한 남쪽으로 끌어가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와 전남 사람들의 특징은 목적을 위해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로 뭉치는 특성을 지녔다.

반면 전북인들은 온순하고 집착이 강하지 않다. 지난날 무대예술을 하는 이들이 연극이나 창극 따위를 만들면 먼저 전주에 와서 공연을 해보고 성공하면 전국 공연에 나서고 실패하면 다시 작품을 수정해 올렸다고 한다. 그 뒤에는 영화를 만들어도 전주에서 먼저 상영을 했다.

전주를 비롯한 전북인들의 사고는 치우치지 않고 사리 분별이 정확했다. 그런 시각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로 볼 줄 알았다. 전주 사람들은 밥을 지을 때 식구들이 먹을 양보다 세 그릇 정도 더 지었다. 혹시 지나가던 과객이나 밥을 못 먹은 사람이 청하면 내주기 위해 밥을 더 짓는 마음을 가졌다. ‘세덤이라고 칭하던 전주의 인심이다. 이런 여유를 지닌 마음이 오늘날에는 모든 걸 다 내주고 초라한 몰골로 스스로 낙후를 곱씹고 있다. 그리고 남 잘되는 꼴 못 보며,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사고, 질시와 철저한 개인주의가 일상화 돼있다.

부끄러운 호남의 수부(首府)

호남이라는 지역 명칭부터 기분 나쁘다. 우리나라의 지역을 중국의 지명을 빌려 지은 사대주의 흔적이 호남이라는 명칭이다. 중국 동정호 아래에 있다 해서 호남(湖南)이라는 그 이름을 아직도 우리는 그대로 쓴다. 어디에 거대한 호수가 있어서 이 지역이 호남인가? 요즘 아이들 언어로 치면 퍽 재수 없는이름이다.

최근 우리는 전남북과 제주를 통치했던 전라감영을 복원했다. 전라감사는 평안감사보다 한 직급 높았으며 조선왕조의 핵심 세력이 아니면 차지할 수 없던 자리, 부와 명예를 다 누리던 최고의 외직(外職)이었다. 가을이면 경상도에서 온 머슴들이 받은 새경을 짊어지고 고향에 가서 식구들과 지내다가 봄이면 돌아와 일했다던 그 시대를 생각하며 헛소리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 전북도 제대로 우리 앞가림을 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 언제까지 호남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에 도매금으로 휩쓸려 광주 · 전남 좋은 일만 하지 말자는 말이다. 전북은 그냥 전북이어야 한다. 걸핏하면 호남 민심이니, 호남인이니 하는 무더기 의식은 다 떨쳐내고 독립을 해야 한다. 우리 몫까지 한꺼번에 챙겨서 좋은 건 그들이 다 차지하게 하고 쭉정이나 빨아먹는 가엾은 역할에서 벗어나자. 떼거리 힘이 필요할 땐 함께 고함치다가 먹을 것이 나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들만 할짝거리는 치사한 책동에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오로지 전북을 위해 달리고 우리끼리 서로 보듬는 마음으로 따로 서야 한다. 그들은 결코 우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만만한 들러리일 뿐이다. 좋은 건 다 뺏어가면서도 그들은 늘 우리라는, '호남'이라는 명분으로 다독거렸다. 그렇게 70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자칫 전북이라는 이름조차 유지하지 못할 형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도사람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특히 지역 이기주의나 편 가르기를 하자는 심사로 이런 글을 쓰는 건 결코 아니다. 여태 흐리멍텅하게 긴가민가하다 보니 도세가 반 토막 나고 전북은 불모의 땅인 듯 사람이 자꾸만 줄어드는 서러운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전북의 기초 자치단체 상당수가 소멸위기에 놓여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고향의 이름조차 빼앗기지 않으려면, 새로운 생각으로 통 크게 뭉쳐서 호남의 전북이 아닌 전라북도라는 우리의 색깔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정치권은 물론 전 도민이 나서 힘을 모야야 할 시기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