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얼굴들
얼굴, 얼굴들
  • 전주일보
  • 승인 2020.10.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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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명절을 맞은 역 대합실은 대만원이다.

  아직 기차가 올 시간이 남아 있어서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려 보니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 비어 있는 자리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TV 바로 밑의 자리다. 거기에서라도 좀 쉬었다 가려고 앉아 보니 참 희한하다. 모두들 TV 화면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데 난 TV 밑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화면에 정신이 팔려 그 아래에서 자기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의식하고 있지 않기에 나는 마음 놓고 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볼 수가 있었다. TV 화면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의 얼굴, 얼굴들. 가지가지다. 천인천색이다. TV 화면보다 더 재미있다. TV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모두들 까르르 웃어댄다. 웃는 모습도 가지가지요, 웃는 정도도 제각각이다.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쩌면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하하하!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사람이 있고, 입만 벌려 빙그레 웃는 사람도 있다. 내내 즐거운 표정으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전혀 웃지 않고 TV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들도 있다. 바라보고 있는 나까지도 즐거워지는 사람이 있고, 저사람 왜 저러나 걱정스러워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보이는 사람의 표정에 따라 내 표정도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왕이면 즐겁게 웃음 띤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는 생각으로 아까부터 손으로 턱을 고이고 웃고 있는 멋쟁이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도 연신 웃음이 나온다. 그의 얼굴이 점점 더 예뻐 보인다.

  문득 십인십색인 저 얼굴들 중에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를 생각하며 차례차례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살펴보니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법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래도 어느 등급쯤 될까 어림짐작을 해 보니 십 등급 중 아무래도 칠팔 정도의 하위 등급일 것 같다. 그렇다면 앞서 나처럼 이 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본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에게 나는 위로가 되었을까, 부담이 되었을까.

  어떤 행사장에서 안내를 하기 위하여 서 있으면 각양각색의 얼굴들을 대하게 된다. 행사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겁고 편안한 마음을 주리라 마음먹고 웃으면서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환영을 해도 얼굴이 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냥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한 사람도 있고, 내가 인사말을 건네어도 묵묵부답 표정 없이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정이 굳어져 있다가도 내가 인사를 하면 금방 얼굴이 펴진다. 오던 걸음을 멈추어 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받는 사람도 있고 수고하십니다.’ 다가와서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다. 참으로 많은 얼굴들을 대하면서 안내 맡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얼굴에서 내 모습을 찾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나도 금방 들어간 사람처럼 오던 발걸음 정중히 멈추어 서서 답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창조주가 지어주신 귀한 얼굴을 가지고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부담을 주었다면 이 또한 죄가 아니겠는가. 공자는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바르고 깨끗한 삶을 통해 온화하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얼굴이 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풍기라는 말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얼굴들이 있다. TV 화면에 비친 영광의 얼굴과 부끄러운 얼굴이 있는가 하면 내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얼굴들도 있다. 젊었을 때에나 늙었을 때에나 똑같이 고운 어머니의 얼굴이 있고, 세월이 흘러가도 늙지 않는 첫사랑의 여인의 얼굴이 있다. 오랜 동안 잊고 있다가 문득 떠오르는 죽마고우의 얼굴이 있고, 언젠가 야간열차의 유리창에 비친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나리자 같던 여인의 얼굴도 있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수없이 많은 얼굴들. 오늘도 거리에 나서면 수없이 마주치는 얼굴, 얼굴들. 그런데도 똑같은 얼굴은 하나도 없다.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었다는 인간의 얼굴이 왜 이다지도 천차만별일까. 조물주인 하느님께서도 사람의 얼굴만은 똑같이 만들어 낼 수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기에 조물주의 오묘한 섭리가 있는 것일까. 인간은 똑같은 것을 잘도 만들어 낸다. 0.1의 오차도 나지 않는 공산품이 그것이요, 맨눈으로는 구별해 낼 수 없는 위조지폐가 그것이다.

  그러나 신이 만든 물건에는 똑같은 게 없다. 수없이 만들어졌다 지우고 다시 만들어지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똑같은 게 없고, 온 산을 덮고 있는 나무도 똑같은 게 없다. 나무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많은 나뭇잎까지도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과연 신의 솜씨다. 인간에게 모든 물건을 각각 다르게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과연 몇 개나 만들다가 그만둘 것인가.

  수없이 많은 얼굴, 얼굴들. 이것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똑같은 얼굴이 거리에 가득 찬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 70억 개나 돌아다니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눈이 열 개라도 가족도 친구도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얼굴. 잘 생긴 곳이 하나도 없다고 못마땅해 했지만 똑같은 모양이 없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얼굴 찡그리지 말고 곱게 펴서 TV 아래에서 보았던 얼굴들 중에 가운데쯤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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