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연의 얼굴을 마주할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자연의 얼굴을 마주할 지혜가 필요하다
  • 전주일보
  • 승인 2020.10.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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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화 / 한국농어촌공사 전주완주임실지사장
이 종 화 / 한국농어촌공사 전주완주임실지사장

폭염이 예고되었던 대한민국의 2020년 여름은 54일간 852mm의 강수량을 기록하며 유례없이 길고 강력한 장마로 몸살을 앓았다. 그로 인해 도시가 침수되고, 제방이 붕괴되었으며, 애꿎은 소는 살기위해 헤엄쳐야만 했다.

거대홍수와 초강력 태풍 같은 기상이변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2020년의 힘겨운 장마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 봐야한다.

예나 지금이나 농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홍수, 가뭄, 바람 등 자연재해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데려온 신하가 풍사(바람), 우사(비), 운사(구름)인 것을 보면, 농경을 기본으로 했던 우리나라는 고대사회에서부터 날씨를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날씨가 생계에 미치는 영향이 컸던 만큼 우리 조상들이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수리시설의 확충과 정비였다. 3,000년 전인 삼한시대에서부터 제방을 축조하여 저수지를 만들고 개울의 일부나 전부를 막아서 물길을 돌리는 보를 만드는 등 수리시설물을 설치해왔다. 전라북도 대표적인 고대 저수지인 김제 벽골제가 바로 그러한 예다.

이렇게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조상들의 노력은 수리조합이라는 형태를 통하여 전승되어 왔으며, 현재에는 한국농어촌공사가 그 중책을 맡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저수지를 만들고 물을 가두어 필요한 농지에 공급하는 공기업으로, 보유하고 있는 저수지들과 농업생산기반시설을 기반으로 농업농촌의 이수와 치수를 다룬다.

논으로 물이 잘 통하게 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는 이수(利水). 수리시설을 잘 정비하여 홍수나 가뭄의 피해는 막는 치수(治水). 이 두 가지는 농어촌공사 본연의 임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날씨는 고대와는 다르게 거대홍수, 메가가뭄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이상기후와 기상이변의 연속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러한 ‘기후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농어촌공사도 선제적으로 준비를 해왔다. 공사에서 관리하는 약 3,400개의 저수지 중 중대형 저수지는 200년에 한 번 내리는 큰 비도 견뎌낼 수 있도록 시설을 보강했고, 흙으로 조성된 토공수로를 구조물화하였으며, 상습침수지역에 배수시설을 설치하는 등 연차적으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올 여름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엔 농민의 한숨과 눈물이 그득하다. 한숨과 눈물의 의미와 깊이를 알기에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음을 깨닫는다. 70~80년 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중소형 저수지를 대상으로 제방을 높이 쌓아 치수 능력을 높이는 일, 노후화된 용·배수로를 현대화하거나 용량을 키우는 일, 선제적인 안전대책으로 재해피해를 최소화하는 일 등 무거운 마음으로 책임감을 다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농사는 기술보다 때를 맞추고 절기에 맞추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절기의 흐름은 조금씩 어긋났고, 이제는 온 국민이 기후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어느덧 꽤 빨라진 자연의 시계를 맞추기 위해 농어촌공사는 오늘도 불철주야 발로 뛰지만,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한 인공구조물 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이라.

아무리 현대과학이 발달됐다지만 때에 맞지 않은 가뭄과 홍수, 폭우, 폭설 등의 자연재해는 하늘에 기대어 사는 농민들에게는 아직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후변화는 농민뿐 아니라 인류가 느끼는 공동의 불안감임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관심이 아닐까. 고대시대 여름 장마가 버거워 저수지를 축조한 우리의 조상들이 그러했듯, 우리 모두 힘을 맞대어 새로운 자연의 얼굴에 맞는 지혜와 슬기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마음만은 우리네 농민과 가까이 하는 2020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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