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한가위 명절에
어정쩡한 한가위 명절에
  • 전주일보
  • 승인 2020.09.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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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뭐니 뭐니 해도 계절은 가을이 좋다. 누렇게 익은 벼가 살랑거리는 바람에 고개를 흔들고 사과가 붉은빛을 자랑하는 가을은 쳐다만 봐도 배가 부르다. ‘더도 덜도 말고 어쩌고하는 묵은 수사를 끄집어오지 않아도 이 풍성한 계절에는 마음조차 넉넉하다.

이 좋은 계절, 곳간을 채우고 채운 것을 나누며 멀리 나갔던 이들이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아름다운 명절이 하찮은 미생물인 바이러스에 먹혀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천년 전통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물려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참혹한 오늘이다. 시골길에 집에 내려오지 않는 것이 효도라는 펼침막이 걸린 한가위 풍경 뒤에 숨은 마음들이 아리다.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이 부모를 돕는 일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전해지는 방법이란다. 고향의 노부모들은 오매불망 그리던 자손들의 얼굴을 스마트 폰에서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들이 못 오는 대신 계좌에 보내온 금액으로 정을 가늠하고 아이들의 형편을 짐작하는 서글픈 한가위 풍경은 지난날 그 어렵던 외환위기 때에도 없었다.

 

해가 갈수록 기력이 부치는 노인들에게 그리운 아이들을 보는 건 새로운 힘이 솟는 명약이었다. 그 희망조차 볼 수 없는 이번 한가위는 어디에 화풀이할 곳도 없는 막막함뿐이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옷섶을 파고들자 어째 벌써 추워졌다냐?”하면서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고 눕는 노인은 ~!”하는 외마디 신음으로 이 가을의 복잡한 심사를 드러낼 것이다. 다른 때라면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 갈 법하지만, 그마저 코로나바이러스에 빼앗겨 갈 수 없으니 터지는 가슴으로 누워 아픈 속을 달랠 것이다.

한편, 덕분에 시댁에 가지 않게 된 며느리는 시부모 계좌에 예년보다 많은 금액을 보내도 비용이 적게 든 걸 생각하며 절로 미소를 짓는다. 물론 비용보다 시골 시댁에 가서 손에 익지 않은 음식 장만을 하지 않게 돼서 신이 났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무슨 구실을 만들어 친정에 갈 궁리를 하느라 머리를 굴릴 참이다.

닷새의 연휴를 방콕으로 보내기엔 너무 길고 아까운 시간이다. 그렇다고 사람 모이는 곳에 갈 수도 없으니 너도나도 산으로 바다로 몰려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바이러스에게는 기회가 된다. 나 홀로, 딱 둘이 정도가 아니라면 어디든 사양하고 물러나야 하는 게 이 시대의 처세술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바꾸는 중이다. 가장 작은 단위의 기본 조직이랄 수 있는 가족관계를 흩트리는 것을 시작으로 친구와 이웃마저 소원한 관계로 바꾸었다. 정출어근(情出於近), 서로 가까이 대하는 데서 정이 생기는 법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게 상정(常情)이다. 유달리 끈끈한 정에 매여 사는 우리 앞에 코로나바이러스는 치명적인 독을 풀어 놓고 낄낄거리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은 미생물들이 우리 인간을 제멋대로 조종하는 듯 울화가 치밀지만, 이 또한 우리 인류가 저지른 잘못에서 비롯했다니 원망할 곳도 없다. 끝을 모르는 욕심으로 자연을 파괴해가며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안간힘을 한 죄가 이처럼 그게 다가설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아니, 알았다 해도 그들은 당장 더 많이 갖겠다고 저질렀을 터이다.

세계 곳곳에서 원시림을 잘라내고 더 많은 화석연료를 소비하여 막대한 부를 차지한 미국은 지금 그 죄 값을 받느라 죽을 맛이다. 710만 명이 감염되어 209천명이 죽었다. 월남전과 이란, 한국전쟁에서 죽은 미군의 숫자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이 죽었다. 그래도 트럼프는 낄낄대며 미국은 대처를 잘한 덕에 적게 죽었다고 큰소리친다.

바이러스에 죽은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 들거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부자들은 바이러스와 접촉할 기회가 적어 감염되거나 죽지 않는다. 지구를 망친 건 부자들이고 병에 걸려 신음하다 죽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입으로는 떠들어도 현실에서 가난은 지긋지긋하게 떨어지지도 않는 죄악 덩어리다. 가난이 죄라는 이 평범하고 오래된 진리는 코로나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나라에 오늘의 코로나 추석을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일부 종교집단과 정치집단, 다단계 판매망의 허황한 생각과 무분별한 행동 때문이었다. 대구의 신천지장막교회와 서울의 사랑제일교회, 헌금을 벌겠다고 죽어라 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일부 교회 등 그들 코로나 전도사들 때문에 오늘 우리는 천년의 아름다운 관습조차 빼앗기고 우울한 한가위를 맞고 있다.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한다. 가짜목사의 엉뚱하고 아전인수식 성서해석에 현혹되어 정신 줄을 놓고 그들의 혀 놀림에 뼈 빠지게 번 돈을 바치는 어리석은 신앙은 그만두자. 천국에 쌓으라는 재물은 목사에게 바치는 돈이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돕고 이웃 사랑에 가진 것을 쓰라는 가르침이다. 목사나 교회의 통장은 천국의 창고가 아니다. 그런 이상한 가르침은 스마트 폰에서 들리는 보이스피싱에 다름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에게 큰 재앙으로 다가서긴 했지만, 어쩌면 이런 시련이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세계가 지구기후와 자연파괴에 눈을 돌리게 했다. 각국이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전기차 개발 경쟁은 어쩌면 우리에게 기회로 다가설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왔다.

석탄과 석유, 원자력보다는 태양광, 풍력,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쏠리는 오늘이다. 벌써 지난해보다 훨씬 맑아진 하늘을 볼 수 있고 바이러스 덕분에 나들이가 줄어 먼지도 줄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바닷물 온도가 높아져 강력한 태풍이 자주 발생한다. 우리가 긴 장마에 짜증을 내는 동안 중동과 터기 지역은 가뭄에 거대 호수가 바닥을 드러냈다.

이 지구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지구를 버리고 우주 저 너머에서 살 곳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우리 모두 나 한 사람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생각하지 말고 환경 보존에 마음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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