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내민 작은 손
아이가 내민 작은 손
  • 전주일보
  • 승인 2020.08.2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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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 금 종/수필가
백 금 종/수필가

진흙 속에 진주가 있듯 우리 사회에서도 진주 같은 보배들이 있다. 그 보배들은 금은이 아니요, 고가 귀중품도 아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고 있는 백지처럼 깨끗한 아이들 일 수 있다.

시내에 볼일이 있었다. 자전거로 가기 위해 거치대로 갔다. 많은 자전거가 거치대를 꽉 메우고 있었다. 내 자전거 옆에는 서너 살의 아이가 탈법한 꼬마자전거도 매어 있었다. 한 손으로는 그 꼬마 자전거를 밀치고 다른 한 손으로 내 자전거를 꺼내려 하니 이리저리 걸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 자전거를 이리 틀고 저리 비끼면서 거의 다 빼내는 순간이었다. 어느 조그마한 손이 재빨리 꼬마자전거를 붙들어주었다. 그 덕분에 내 자전거를 수월하게 빼낼 수 있었다.

자전거를 빼내고 돌아보니 그 주인공은 조그마한 어린아이였다.

이 꼬마 자전거가 네 자전거니?”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왜 붙들어주었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어린아이가 어느 틈에 내가 자전거를 빼내고 있는 이곳까지 왔으며, 왔다 하더라도 가만있지 않고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너 이 아파트에 사니?” 다시 고개만 끄덕인다.

몇 학년이야?” 초등학교 삼학년이라고 했다. 그러고 다시 보니 어깨에는 가방이 메어 있었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던가 싶다. 얼굴을 찬찬히 보니 착하게 생기고 귀여움도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한 것은 모르는 노인이 자전거를 빼느라 애쓰는 현장을 보고 도와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났다는 점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각박한 시대이다. 불의를 보아도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면 나 몰라라 하는 사회이다. 남을 도우면 되레 내가 손해 본다는 피해 의식이 저변에 갈려 있는 세태이다. 그러한 생각은 나이를 먹을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비례한다.

그런데 이 순진무구한 초등학교 어린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실천한 것이다. 비록 작은 일이긴 하지만 선행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용기와 자발성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속에 꽃이 들어 있을 때 가능하다는 말과 같이 그 어린아이가 남을 도운 것은 그의 마음속에 남을 도와야 한다는 아름다운 의식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정말 착하다. 몇 층에 살지?”

나와 같은 라인에 살지만 좀 위층이다. 다음에 그 아이의 부모를 만나면 칭찬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칭찬은 자존감을 높여주는 보약이라 하지 않던가? 내 생각을 눈치 챈 듯 토끼같이 깡충깡충 뛰어가는 뒷모습에 따스한 한여름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내 마음에도 흐뭇함이 가득했다. 나를 도와주어서가 아니다. 그 어린아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견하고, 용기를 내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가상한 일이 아닌가?

요즈음에는 적게 낳아 화초처럼 키워내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결해 주려 한다. 남과의 경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니 아이는 자기만 알고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생각이 좁다. 자발적으로 남을 돕는다는 것은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듯 흔한 일이 아닌 것 또한 요즘 세상이다. 햇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는 자연의 진리도 한 번쯤 헤아려 보아야 할 일이다.

그 아이가 3학년이라 했다. 마침 3학년짜리인 우리 외손자가 생각났다. 우리 손자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남을 도울 수 있을까? 그리고 칭찬을 받으면서 곱게 자라고 있는가? 제 어미 말로는 잘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라 했다. 하지만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인성이 바르게 형성되어야 하리라.

나의 어린 시절도 돌아보았다. 칠십여 년 전의 모습들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나는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기다리던 중에 태어난 손자라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살았다. 항상 웃어른께 예의를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이웃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할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에 모범이 된다고 칭찬을 받은 적은 암만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 이 어린이에 비하면 지혜도 부족하고 융통성도 한참을 모자란 편이었지 싶다.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 때부터 알아본다.’ 는 속담도 있다. 훌륭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하는 행동이 대수롭지 않다는 말일 게다. 자라면서 한두 가지 잘한다고 그의 장래가 보장된다고 말할 수 없으나 그래도 칭찬받으면서 자란다면 말썽을 부리는 아이보다야 잘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오늘 이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이 어린이가 속담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음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지하에서 올라오는데 1층에서 젊은 아빠와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만났다. 나는 반가움에 안녕하고 인사했다. 젊은 아빠는 자기는 인사도 안 하고 아기한테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라 했다. 그런데 아기는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아빠가 먼저 인사하면서 가르쳐야 하는데 자기는 하지 않고 아기에게만 하라 하니 안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절로 자란 나무토막이 아름다운 나무인형이 될 수 없다. 아름답고 예쁜 나무인형이 되려면 톱으로 자르고 칼로 다듬고 물감으로 예쁘게 칠을 해야 한다. 오늘 이 아이가 잘 다듬어가고 있는 하나의 나무인형이 아닌가 했다. 이러한 인형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으려니 싶다.

8월의 하늘이 맑다. 반짝이며 내리쬐는 햇볕이 녹음 사이에서 부서진다. 그 사이로 나서는 내 마음에도 푸른빛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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