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주는 울림
광복절이 주는 울림
  • 소재완
  • 승인 2020.08.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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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부보훈지청 김민선
전북서부보훈지청 김민선 주무관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 우리는 75주년이 된 8월 15일 광복절을 맞는다.

우리는 하지만 광복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하루 쉬는 날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독립운동을 위해, 오직 나라를 위해 눈보라가 매섭게 부는 겨울에 목숨을 걸고 다니시던 독립운동가분들의 발자취를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숨죽여 다니던 그 길이 얼마나 춥고 컴컴한 밤중이었을 지를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맞는 광복절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의 명이 다하자 압록강을 넘은 가족이 있다. 조선 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문가였던 삼한갑족, 우당 이회영 일가의 이야기다.

몇 대에 걸쳐 풍족하게 쓸 수 있을 만큼 재산과 권력이 있던 그들은 일제강점기에도 대우를 받으며 지낼 수 있었지만, 가족회의를 열어 한반도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구차히 생명을 도모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들은 모든 재산을 헐값에 처분하고 서간도로 가 집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며 독립투사들을 지원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선 독립투사들이 1920년대 무장 항일투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그토록 부와 권력이 넘쳤던 그들이 곧 모든 재산이 바닥나 강냉이죽도 마음껏 먹지 못하며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했을까? 꿈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시대 사람들의 꿈, 식민지 조국을 후대에 남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꿈.

결국 이회영은 1932년 상하이에서 붙잡혀 일흔이 다 된 적지 않은 나이에 고문을 받다가 숨을 거두게 된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인 것이다.”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국의 독립만을 바랐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말씀은 그렇기에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그 시절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것은 이회영 선생뿐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 그 외에도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순국선열들이 있다.

이제 다가오는 광복절에는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 국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의 숭고한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지며,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껴보는 뜻깊은 광복절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전북서부보훈지청 주무관 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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