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回歸)
회귀(回歸)
  • 전주일보
  • 승인 2020.07.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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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분 광 섭 /수필가
분 광 섭 /수필가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신록이 내뿜는 향기에 들썽이는 마음으로 오후 산책에 나섰다. 풋풋한 녹향(綠香)에 흠뻑 취하고 싶어 덕진공원 속 건지 산에 올랐다. 그동안 무릎이 아파서 찾아오지 못한 동안 변한 것이 많아 낯이 설었다. 서편 장군바위 쪽에 오르고서야 옛 정취가 나를 반기는 듯 아련한 마음이 든다. 하늘을 찌를 듯 자란 상수리나무와 외국산 단풍나무 숲속은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10년 만의 회귀였다. 예전엔 없었던 정자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노라니 문득 남대천 연어가 머릿속을 헤엄쳐 올라왔다.

 

1967년 여름이다. 강원도 양양군 남 설악산 계곡으로 머리를 식히러 갔었다. 하룻밤 야영을 마치고 아침쌀을 씻으러 냇가에 갔다가 깜작 놀랐다. 내 장딴지만한 고기들이 등지느러미를 물위에 내놓고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걸 보았다. 마을사람에게 물었더니, 연어가 알에서 부화해 어린고기로 떠나 태평양 캄차카반도 연안까지 나갔다가 산란을 위해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이라 했었다. 내 생전 그렇게 큰 고기를 민물에서 본적도 없고, 또한 그 머나먼 곳까지 나갔다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온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었다.

 

회귀(回歸),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해와 달, 시계처럼 일정하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하겠지만, 처음 있던 곳이나 상태로 복귀하는 연분(緣分)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2015년 봄이다. 신아 문예창작(수필)반 강의를 수강하고자 신아출판사를 찾아갔다. 찾아간 출판사는 내가 1969년부터 10여 년간 신혼살림을 차렸던 집골목 어귀에 있었다. 그곳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여겨온 젊은 시절의 고향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살았던 곳에 35년 만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감회가 유난히 새로웠다.

 

마치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반백년 가까운 세월 저편을 떠올려보았다. 처음 이사 올적엔 중고등학교가 셋이나 모여 있지만 도심에선 가장 변두리에 속했다. 동네 입구에 쌀가게, 연탄가게, 세탁소, 이발소, 잡화, 학용품, 콩나물을 파는 구멍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골목은 내가 아침저녁으로 드나들고 우리 아이들이 줄달음쳐 달려 나오거나 초등학교를 다니던 길이다. 내 삶에서 깨가 쏟아졌다면 이곳에서 살던 시절이지 싶다. 집이라야 13평짜리 개량 형 한옥이라서 큰방 하나와 부엌이 딸린 작은 집이였지만 아내와 세 아이랑 함께 오순도순 살았다. 우연찮게 그곳을 찾아갔던 것이다.

 

1년 동안의 수업 일수가 36일이었는데 매주 출석하는 날마다 즐거웠다. 그 옛날의 흔적이라곤 골목길을 빼놓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는 그 옛날 골목이 그대로 보였다. 옹기종기 붙어있던 가게와 살던 사람들의 일상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20대 후반 청춘을 구가하던 젊은이가 종심(從心)으로 살아가는 칠십대 노인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실감하게 해주었다. ‘아빠!’하고 부르며 달려 나오는 세 아이들의 환영(幻影)이 어른거리는 순간, 내 마음도 그 시절로 돌아갔었다.

 

코로나 19’가 온 세상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지도 반년이나 되었다. 아직도 끝을 짐작할 수 없고 불안이 계속되면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노인복지관을 비롯하여 다중시설의 이용을 제한하여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한다. 대면관계를 중단하다보니 사는 것 같지도 않고 일상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날마다 코로나 상황보고로 하루를 시작하고 방역문제로 하루를 마감하는 세상이 되었다. 다중시설의 이용을 금지하고 학교와 교회가 문을 닫고서 화상회의,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택배거래 등으로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거리두기를 생활화 하니 집에서만 보내는 것도 익숙해 졌다. 초창기에 집단 감염으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소강상태로 유지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금년이 지나도록 이 사태가 이어지고 예방 백신도 내년이 돼야 나온다지만, 바이러스가 계속 변종을 만들고 있어서 과연 백신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거기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것이라는 경고에는 눈앞이 캄캄해 진다.

 

다시 노인복지관을 비롯해 다중시설의 문이 활짝 열리고 마스크를 벗어 던지는 날이 어서 왔으면 싶다. 마주보고 앉아서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보따리도 풀고 정()도 나누고 싶다. 가고 싶은 곳도 다녀오고, 만나고 싶은 벗들도 옛날처럼 자연스레 만나서 차를 마시고 싶다. 얼굴도 보고 싶다. 포옹하고도 싶다. 사람 냄새를 맡고 싶고, 표정을 보고 싶으며, 전화기 목소리가 아닌 볼륨 있는 육성과 감정도 느껴보고 싶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 이 시대를 견디는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한데,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다시 지난날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는 바이러스와 함께 견디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도 말한다. 그 모든 일이 우리가 저지른 자연훼손에서 온 것이라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세계가 하나 되어 대처해나간다면 충분히 극복하고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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