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의 독후감 – 군중심리(귀스타브 르 봉 지음)
최영호의 독후감 – 군중심리(귀스타브 르 봉 지음)
  • 김주형
  • 승인 2020.07.01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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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집단 중심의 대한민국의 군중은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가 아니면 반대인가?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후보자의 성문화된 공약은 나중에 경쟁자들이 거기에 대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너무 명확해서는 안 된다. 말로만 내세우는 공약은 지나치게 과장되어도 상관없다. 거창하기 짝이 없는 개혁을 서슴없이 약속할 수 있다. 그처럼 과장된 공약은 즉시 큰 효과를 발휘할 뿐 아니라 장차 전혀 아무 책임도 지우지 않는다. 지속해서 관찰한 바로는 유권자들은 당선자가 내세운 공약에 환호만 할 뿐 그가 그것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는 전혀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이다.”

"군중 선거는 다 똑같으며, 그것이 흔히 표현하는 것은 결국 인종의 무의식적 욕망과 멸망이다. 나라마다 당선자들의 평균은 그 인종의 평균적인 영혼을 나타낸다. 세대가 바뀌어도 이 같은 사실은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이다.”

1895년 프랑스의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귀스타브 르 봉이 쓴 ‘군중심리’의 한 문장이다. 위 문장은 군중심리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군중의 한 형태로 ‘유권자’ 군중을 설명하는 부분 중 일부이다. 눈치 없는 독자라 하더라도 저자가 군중에 대해 냉소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이후 우리는 1960년 4. 19. 혁명과 1980년 5. 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혁명, 그리고 가까이는 2016년 촛불시위 또는 혁명을 겪었다. 우리는 광장의 정치를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민주주의의 한 축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식자들은 광장의 민주주의와 혁명을 두고 프랑스 혁명을 꺼내곤 한다.

그런데 1841년생의 프랑스 출신의 저자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군중을 이성적인 문명과 대치되는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속성을 지녔다고 보았다. 그리고 군중을 경계한다. 도대체 프랑스 혁명에 어떠한 일이 있었던 걸까?

1789년 증세를 하려던 루이 16세에 대항해 부르주아는 제헌 국민의회를 만들었다. 왕이 의회를 공격하려 하자 파리 민중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봉건제 폐지와 자유와 평등을 골자로 한 프랑스 인권 선언이 발표됐다. 그리고 근대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아는 프랑스 혁명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1789년 10월 여자들의 베르사유 행진. 혁명 후 파리는 배가 고팠다. 파리의 군중은 배고픈 이유를 왕실이 파리의 식량 사정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군중은 왕이 파리에 오기를 원했고, 베르사유궁으로 행진했다. 군중은 왕을 좋아한 대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 왕비를 증오했다. 군중은 궁으로 돌진했고, 효수된 경비병의 머리를 장대에 꽂고, 겁에 질린 왕과 왕비를 둘러싸고 파리로 돌아왔다.

1792년 9월 대학살. 혁명의 전파를 염려한 프로이센은 프랑스를 침공했다. 파리는 공포와 증오에 휩싸였다. 코뮌의 지도자는 상황 수습을 위해 인민의 정의에 호소했고, 열성적 혁명 지지자 수백 명은 파리의 감옥을 습격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재판 없이 잔혹하게 살해했다. 민중의 적이었던 왕비가 친언니처럼 따랐던 랑발 공작부인의 머리를 왕비의 창 앞에 걸어두었다.

1793년 3월 방데전쟁. 프랑스 서부 방데 지역에서 농민이 반란을 일으켰다. 혁명 정부에 반기를 든 반혁명은 혁명 정부의 혁명을 더욱 과격하게 만들었다. 혁명군은 방데로 갔고, 성인 남자, 여자, 어린아이를 단두대와 총으로 죽였다. 남녀의 옷을 벗겨 밧줄로 묶은 후 강에 빠뜨렸다. 무차별 학살이 자행됐고, 프랑스에서 방데는 조심스러운 어휘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왕과 왕비,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처형, 공포정치, 봉기 등을 반복하다 우리가 잘 아는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었다.
혁명과 군중의 시대를 겪은 저자가 혁명을 낭만적으로만 보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저자는 군중심리를 통해 군중의 특성과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군중을 다루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이 20세기 파시스트에게 영감을 줬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군중을 통해 유권자, 의회, 언론, 교육에 대한 재기 넘치는 의견을 볼 수 있다. 밑줄 그어가며 읽다 보면, 프랑스에서 100년 전에 쓰인 책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다만, 저자는 개인과 대립하여 군중을 야만적이라고 보았는데, 우리 현실은 집단과 무리 짓기에 능숙해 군중이 개인과 대립하는 단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군대를 갔다 온 성인 남성이 주를 이루고, 국가와 집단 중심의 세계관 속의 대한민국을 두고, 저자가 어떠한 얘기를 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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