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대, 불평등 행정
어려운 시대, 불평등 행정
  • 신영배
  • 승인 2020.05.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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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
신영배 대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우리를 뒤흔든 지 벌써 다섯 달째다. 다행스럽게 대한민국은 나름 적절한 대책으로 큰 위기는 넘긴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바이러스가 무섭다고 언제까지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조심스럽게 일상생활을 시작하고 경제활동도 차츰 범위를 넓혀가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럽다.

일상생활이 시작되면서 다행스럽게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풀어져 시장이나 동네 가게에서 주름이 조금 펴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아니 이 땅의 역사 속에 온 국민에게 같은 기준으로 재화가 나눠진 일은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한 일도 처음이다. 의존수입이 대부분인 전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능력으로 1인당 10만 원을 나눠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코로나19 때문에 집행하지 않은 예산을 털어 모으고 재난 예비비를 풀어 재원을 마련했다. 재정 형편이 나쁜 일부 시군은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자체에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을 뺀 나머지 금액만 지급했다. 아마 없는 재원을 억지로 만들어 무리하게 지급한 지원금이었기에 그리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본다. 그러나 그렇게 정부 지원금액만 받은 지역 주민들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게 되고 불만도 가졌을 터이다.

주고 욕먹는 부조화 행정

본지 526일 자 1면 기사에는 일목요연하게 표를 만들어 도내 각 시군의 재난지원금 지급내용이 실려있다. 같은 전북지역인데 금액과 지원 대상이 다르고 지급날짜와 형태도 다르다. 전주시의 경우는 지난 3월 말부터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든 시민을 선별하여 지급하기 시작하여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등 가구에 최대 527,000원을 지급했다.

이후 군산시가 전 시민에게 10만 원을 지급했으며 이어서 익산시와 완주군 등이 전 주민에게 10만 원을 지급했다. 일부 시군이 전체 주민 1인당 10만 원을 지급하자, 다른 시군도 10만 원씩 예산을 마련하여 지급했거나 지급할 예정이다. 진안군은 주민 1인당 20만원을 지급했다. 어떻게든 재원을 만들어 지원금을 주느라 재정 형편이 어려운 시군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주민이 받아 사용하는 지원금의 형태도 제각각이다. 전북은행·농협·BC 선불카드로 주거나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시군도 있다. 또 지급날짜도 지난 3월부터 6월 초에 지급할 예정인 시군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렇게 모두 다르게 지급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아직도 지급을 시작하지 않은 시군에서는 받기 전에 불만부터 나오고 있다.

이 일을 지켜보면서 정말 아쉬운 일은 각 자치단체가 이 사업을 전개하면서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름 경쟁적으로 지급을 결정하고 다른 시군보다 뭔가 다르게 해서 주민들의 인정을 받고자 했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퍽 좋지 않다. 경쟁보다는 서로 의견을 나누고 모아서 받는 사람들이 흐뭇하고 도민으로 긍지를 느끼게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주면서 욕먹고 받으면서도 툴툴거리는 이런 행정은 곤란하다.

조정과 중재자 역할을 포기한 전라북도

정부가 주는 지원금을 받아서 쓰기 시작한 시민들은 공돈처럼 생각하고 비싸서 먹지 못하던 쇠고기도 사고 예쁜 손자 손녀에게 선물도 사준다고 한다. 그 덕분에 얼어붙었던 지역 상가의 매출이 늘어 찌푸렸던 얼굴이 조금 펴지는 기적도 보인다. 귀신도 사귈 수 있다는 돈이 풀렸으니 세상이 조금 부드러워지는 건 당연하다. 정부가 노린 효과가 제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시군 간 협의가 잘 되어서 불만 없이 시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자꾸만 뇌리에 맴도는 시간이다. 재난지원금은 얼핏 정부나 단체장이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낼 수 있지만, 그 돈은 기업과 국민이 낸 세금이다. 다른 데에 쓰일 돈을 전용하거나 국채를 발행하여 마련한 재원이므로 소경 제 닭 잡아먹기인 셈이다. 우선 쓰는 건 좋아도 다시 생각하면 어디선가는 그만큼 부담으로 돌아올 터이다.

이번 재난지원금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크게 아쉬웠던 건 전라북도의 역할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타 시도와 평형을 맞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내에서는 크게 차이를 느끼지 않도록 조정 내지는 중재할 수 있어야 했다. 도내에서 사는 지역에 따라 자치단체의 지원이 다르다면 당연히 불만이 따를 수밖에 없다. 도민의 단합된 힘은 거창한 구호나 멋들어진 사자성어에서 나오지 않는다. 촘촘하게 살피고 헤아리는 전북도의 노력이 아쉽다.

여러 차례 전북도의 역할을 말했지만, 이번 일처럼 전북도가 무능해 보인 적이 없다.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했는지, 아예 관심조차 없었는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주겠다는 계획만 내놓고 아직도 지급하지 않은 지역의 불만을 듣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법적 권한만 논할 게 아니라 설득하고 함께하는 노력이 아쉽다.

엊그제 모 중앙 일간지에 하버드 경제학자 로고프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에 경제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가 남의 일처럼 말하지만, 경제 위기는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코로나 영향으로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는 형편이다. 우리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므로 세계 경제 침체 영향을 많이 받을 거라는 예측은 당연하다.

이런 시기에는 불경기에도 필요한 물건을 팔고 불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계층이 선호하는 물건을 팔 준비를 해야 한다. 어려운 시기가 닥치는 현실을 바로 보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와 전라북도가 할 일이 바로 그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앞선 대책을 내놓는 일이다.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 위해 전북도의 혜안과 노력이 절실하다.

/신영배 전주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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