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자치전북 오명의 탑’을 세우자
차라리 ‘자치전북 오명의 탑’을 세우자
  • 전주일보
  • 승인 2020.05.1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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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이현재

소리가 절러 나왔다. 전주시 의장단의 제주 워크숍사과문을 아무리 곱씹어도 진정성은 다가오지 않고 인식의 가벼움만 재확인할 뿐이다. 회과자신(悔過自新)이라고 했던가? 잘못을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하겠다면 그 자체를 탓할 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보통시민들이 사전을 들춰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고사성어를 인용한 심리의 근저에서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돌리는 엘리트식 화법을 듣게 된다. 우리가 이래봬도 문자 속은 깊은 시의원이야 하는듯한 지적 과시욕도 보게 된다.

그렇지만 사과도 과학이다. 알기 쉬운 용어로 진솔한 마음을 담아내야 제대로 된 사과다. ‘사과문의 정석으로 평가받는 미국 오하이오대학교 로이 르위키 명예교수 교수팀의 연구물은 사과문에 담아야 할 필수적인 요소로 후회의 표현, 일이 틀어진 경위 설명, 책임 인정, 뉘우침 선언, 피해복구 약속, 용서 호소의 .6가지를 제시한다.

하지만 효율적인 후반기 의정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떠났다는 그들이 제주 워크숍에서 23일 동안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논의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경위의 실종이다. 사퇴를 요구하는 지역사회의 거센 요구에 대해서도 의정활동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동문서답을 내놓았다. 피해 복구에 대한 회피다.

전주시 의정을 논의하는 장소로 왜 지역구가 아닌 타 지역을 택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워크숍은 명분이고 일탈과 후반기 의회직 거래가 주목적이었을 것이라는 소리가 시의회 주면에 파다하다.

 

진정성 없는 전주시 의장단 사과문

 

전주시 의장단 파문은 전북의 자치 30년을 돌아보게 만든다. 민주화와 함께 부활된 지방자치는 전북도민에게 있어 일종의 판타지였다. 전국 최악의 빈곤지대로 전락한 낙후의 원인을 오랜 영남 군사정권의 지역차별 탓으로 이해하는 전북도민들은 1991년 지방의회의 부활에 이어 1995년 자치단체장 직선제가 실시되자 스스로의 힘으로 지역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통계는 참담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0년 멈추어 섰거나 오히려 퇴행하는 탈낙후 시계의 적나라한 실상을 비쳐준다.

한국사회 맨 밑바닥에 곤두박질 쳐 있는 상대적 소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경제·산업통계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북도민의 1인당 소득(GNI)2,455만 원으로 전국평균 3,366만 원의 72.9%에 그쳤다. 당시 통계에서 누락된 세종시를 제외하고 전국 16개 시·도 중 최하위다.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나 따져 보면 전국 1위인 울산 5, 033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8%에 불과하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나타난 가구당 소득·자산·순자산의 실태도 마찬가지다.

지역내총생산(GRDP)과 인구는 단체장 직선 원년에 비해 크게 뒷걸음쳐 있다. 1995년 전국의 3.38%던 전북의 GRDP 비중이 김완주 도정의 민선5기가 끝난 20152.92%0.46%포인트나 추락했다. 같은 기간 4.26%였던 인구비중도 3.56%0.70%포인트 감소했다.

그런데도 단체장들의 미사여구는 화려하기 짝이 없다. 송하진 지사는 민선 71주년 기자회견에서 춘화추실(春花秋實)’을 언급했다. 김승수 시장은 아시아의 문화 심장을 외치지만 문화의 심장은커녕 사지(四肢)의 한 자리도 꿰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무능의 민낯을 부질없는 구호로 분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뜨는 도시, 지는 국가>의 저자인 미국의 사회학자 벤저민 바버가 가하는 선의는 무능의 면죄부가 아니다는 신랄한 비판도 듣게 된다.

대표들이 내일로 향하는 통로를 개척하지 못하고 있으니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욱 암담하다. ‘미래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현재 행동(action)과 부작위(inaction)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1966년 창립된 세계미래학회(WFS, World Future Society) 웹사이트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다. 그 미래학의 선구자인 존 매케일은 과거의 미래는 미래에 있고, 현재의 미래는 과거에 있고, 미래의 미래는 현재에 있다는 화두(話頭)를 던졌다.

<도시의 승리>의 저자인 에드워드 글러이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와 미래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구체적인 수치로 증언한다. 30년 전 축적된 인프라가 침체된 도시의 부활과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전북의 자치현장에 판치는 부패와 불·탈법에 시선이 미치면 미래에 대한 전망은 한층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법적 단죄를 받아 임기 중도에 하차한 도내 자치단체장의 수가 30명 가까이에 이른다. 당선무효와 직위상실의 형량에 이르진 않지만 역시 유죄 판결을 받은 단체장을 더하면 그 수치는 더욱 부풀어 오른다. 여기에 광역과 기초 의회 의원들을 다시 추가하면 30년 동안 전북의 자치현장에서 발생한 뇌물과 부패, 불법과 탈법의 부피는 계량하기조차 어렵다.

도의회 의장의 수뢰 사건 재판으로 지금도 진행 중인 일탈의 원인을 조선 중기 유학자인 이수광은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깨끗했던 사람이 탐욕스러워졌다는 인식 자체가 틀렸다”. 나이가 들어서 변한 것이 아니라 젊었을 때 역시 겉으로만 용감하고 깨끗해 보였을 뿐 실제 그 사람의 내면은 비겁하고 탐욕스러웠다는 것이다.

 

신진대사 촉진할 종신 명예형

 

무능과 부패의 고리는 끊이지 않고 도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니 차라리 그 부패의 사례들을 모아 자치전북 흑서를 기록하면 어떨까?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 광장에는 월계관 주인공들의 이름이 총총하게 빛나고 있다. 그 이름 한편엔 오명의 돌이 서 있다. ‘이 돌은 부정을 저지르려는 자에 대한 위협이 되리라’, 고대올림픽이 서기 393년 중단됐으니 그들은 최소한 1627년에 이르는 명예형을 받고 있는 셈이다.

흑서의 종신형이 탐욕으로 빚어지는 부정의 악순환을 끊어낼지 알 순 없지만 도민들에게 적나라한 실상을 알려 자치전북의 신진대사를 조금이나마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순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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