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11월의 단상
(데스크에서) 11월의 단상
  • 이옥수
  • 승인 2008.11.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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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에서)     11월의 단상 
 그 해 11월은 시작부터 우울했다. 첫 날부터 해태그룹이 부도를 맞았다. 며칠 후엔 뉴코아그룹이 쓰러졌다. 연초부터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이어진 터였지만 그 누구도 국가적 위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바로 며칠 전에 정부가 연기금 3조 원의 주식 매입, 채권시장 개방 확대, 기업 구조조정 등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조만간 안정될 거라는 심리적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 환경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외환 보유고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고음이 나왔다. 10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사상 처음으로 1000원을 돌파했다. 주가는 가파른 하향곡선을 긋고 시가총액은 급속히 빠져 나갔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400억-6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는 등 외신보도가 이어졌지만 정부는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국민들도 사실무근임을 기원했다. 하지만 21일이 되자 정부는 구제금융 신청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대혼란의 격변기가 찾아왔다. 11월 초 990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엔 1900원까지 급등했다. 12월 들어 한라그룹, 고려증권 등 기업들의 부도 도미노가 이어지고 9개 종금사엔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졌다.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법정 발행금리 상한선인 연 25%를 넘어섰다. 사상 초유의 금융시장 마비 사태가 엄습했다.
 그제서야 국민들은 심각성을 인식했다. 사회는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 냈다. 법정관리와 워크아웃(Workout·기업 개선작업)은 기업의 유일한 비상구가 됐다. 대량 실업시대에 직장인들은 보너스는커녕 월급이라도 제 때 받을 수 있음을 감지덕지해야 했다. 긴축과 내핍이 미덕인 사회,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의 시대, 그 어둡고 긴 터널이 시작되고 있었다.
 11년의 세월을 훌쩍 지나 다시 11월이다. 강산이 변하는 시간을 넘어섰지만 11월의 단상은 여전히 우울하다. 최근 실물경기의 하강 속도가 가파르다. 산업생산 둔화세가 지속되고 있고 소비는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기업경기 실사지수는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사회는 더 각박하다.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묻지마’식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폐업 비즈니스가 불황기의 호황 업종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스크루지 족’의 확산은 미국과 일본 등 경제 선진국에서조차 익숙한 풍속도다. 극단적인 예도 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생계형 자살로 내몰리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지난달 31일 코스피지수가 1100선을 회복했다. 원·달러 환율은 사흘 만에 반등해 성공, 1290원대로 올라섰다.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11월을 맞아 ‘희망가’를 떠올려 본다.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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