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탈피’의 용기가 필요하다
‘지역주의 탈피’의 용기가 필요하다
  • 전주일보
  • 승인 2020.04.0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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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총선정국에 울려 퍼지는 독전고가 요란하다. 나팔 소리도 거리에 가득하다. 무려 41개 정당이 21대 국회로 진군하면서 울려대는 소리들이다.

정당들은 저마다 유권자들을 향해 자신들의 춤판에 뛰어들어 미래를 여는 한바탕 축제를 열자고 손짓한다. 하지만 선거판에 신명은커녕 탄식과 냉소만 쌓여 간다.

급기야 사상초유의 위성정당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정치를 양분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다투어 내놓은 변종들이다. 본체의 궤도에 자발적으로 빨려든 위성들까지 합하면 그 이름들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그 위성들을 선으로 연결하면 괴물이 튀어나온다. 유리한 선거지형을 점유하기 위한 야합의 산물, ‘게리멘더링이다. 그러니 그들의 정치적 세계관은 지동설로 퇴행해 있다. 위성은 마땅히 국민이라는 행성 주위를 돌아야 하건만 자신들이 국민의 중심이라며 낡은 사고를 고집하고 있다.

혹세무민을 방불 하는 그 본말전도에서 다양한 이해를 수렴해 다사불란(多絲不亂)의 코스모스를 구축해야 할 정치가 정파의 이익만 추구하는 다사다란(多絲多亂)의 카오스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의 지동설이 낳는 카오스

혹여 혼돈의 총선정국이 탈피의 진통 과정은 아닐까? 곤충이 성장하기 위해선 자라면서 여러 차례 허물이나 껍질을 벗어야 한다. 하지만 집권여당 주변과 제1 야당에서 연일 쏟아내는 말들은 총선 후 더 치열하게 전개될 정쟁을 예고할 뿐이다.

미래통합당의 공식 유튜브 채널 진행자는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의 별칭)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하고 임기 끝나면 오랫동안 무상급식 먹이면 된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21대 총선을 넘어 차기 대선에서 집권해 문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자는 협박이다.

여당 측의 겁박도 못지않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을 자임하는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린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비서관은 윤석열 검찰총장 부부가 공수처의 1호 사건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력의 오만과 독선을 시시각각 접하면서 새삼 확인하는 철칙은 독수 독과의 원리. 이는 1939년 미국 대법원은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범죄의 증거능력을 갖지 못한다고 판결하면서 새롭게 선보였던 말이다. 미 대법원이 독수로 비유했던 건 불법의 수사였다. 독과는 불법수사로 얻어진 증거였다.

하지만 독수독과의 원리가 범죄 수사와 사법에만 국한되는 원칙은 아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창출될 정치권력도 예외일 수 없다. 거짓과 허상의 이력으로 채워진 숱한 후보들이 국가와 국민, 미래 등 미사여구를 경쟁적으로 토해내는 모습에서 독수독과의 원리가 떠오른다.

독수독과의 이지러진 선거판

극심한 혼돈 속에 가중되는 것은 판단의 부담(the burden of judgment)’이다. 국민들은 묻는다. 어떤 정당과 후보가 정의롭고 유능한가? 하지만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선택이 무거운 책임을 동반할 때 이 물음은 풀기 힘든 질문이 되기 십상이다.

판단의 부담을 마주할 때 우리는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채 머리 아픈 건 질색이라며 상황 자체를 부정하고 문제를 외면해 버리곤 한다. 이런 외면은 권력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리고 지역주의로 환원되기 일쑤다.

이는 4.15총선 여론지형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다. 외면상 국민여론은 정당의 정책, 도덕성, 이념 등을 기준으로 분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영호남을 양대 축으로 지지정당이 확연하게 갈라지고 있다. 영호남 각지에서 1당 독점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1당 독점이 심각한 병리 현상에 다름 아니다. 우선 물리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맥스웰의 도깨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같은 온도를 갖는 두 물체가 자발적으로 온도가 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느리고 빠른 분자들이 서로 어울려 열도를 조정하면서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은 한쪽엔 뜨거운 분자들, 다른 한쪽엔 차가운 분자들만 몰아세우면 서로 다른 온도를 띨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 결과 한쪽은 너무 뜨거워져 속도와 방향 감각을 상실한다. 다른 한쪽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세계를 뒤흔드는 게 맥스웰의 악마라면 인간사회를 이지러지게 하는 건 치우침의 악마.

프랙탈의 법칙도 파괴된다. 생물과 물리의 세계에서 부분의 구조는 전체의 구조를 닮는다. 그 법칙에서 벗어나면 죽음이나 변종을 피할 수 없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이루지만 지역적으로는 독점으로 나타나는 지역주의 투표 결과도 마찬가지다.

정치꾼정치인의 구분을

국민들이 과연 맥스웰의 도깨비을 떨쳐내고 프랙탈의 법칙을 온존시킬 수 있을까? 전망은 암담하다. 지역주의 헤게모니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첨예한 이념 갈등을 빚고 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진영 대결을 벌이는 양상이 흡사 내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본 모습일 뿐이다. 그 안을 파고들면 정치권력을 놓고 벌이는 영남과 호남의 패권주의 쟁탈전을 보게 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역주의는 헤게모니인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헤게모니는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는 강제력을 동원해 부여할 수도 있지만 헤게모니는 철저하게 자발적 동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거 때마다 지역을 경계로 반대를 위한 반대’, ‘찬성을 위한 찬성의 응원단식 투표 관행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우리 정치를 혁신하기 위해선 지역주의 헤게모니 혁파가 첫 번째 과제로 다가온다.

정치꾼과 정치인을 구분하는 분별력도 요구된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존 롤스가 신학자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1810~1888)의 말을 인용해 지도자의 임무를 설파한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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