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
잔인한 봄
  • 전주일보
  • 승인 2020.03.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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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고 운/수필가
김 고 운/수필가

꽃피는 봄인데, 봄 같지 않고 질병의 공포에 숨죽인 3월이다. 우주를 넘나드는 첨단 과학 문명도 바이러스를 막는 데는 쓸모가 없다. 서로 만나지 않아야 병이 옮지 않는다고 부부간에도 2m 거리를 두고 대화한다니, 가장 원시적인 방역수단인 셈이다.

세계를 제 눈 아래에 두고 눈을 부라리던 트럼프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기죽어 허둥댄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효율적으로 대처하여 차츰 확산이 줄고 있지만, 오는 46일에도 개학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세계 수십 개 나라에서 한국의 진단키트를 구매하겠다고 나서고 한국의 대응방식을 배워간다니, 이럴 땐 한국 사람인 게 다행이지 싶다.

남녘에서는 매실축제 벚꽃축제가 모두 취소되고 사람들끼리 만나지 않아야 하는 삭막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격리상태에 있는 셈이다. 하얀 목련도 방긋방긋 피어나는 벚꽃도 그림 속에서나 보아야 하는 이 잔인한 봄이 지겹다. 시골 산책길엔 분홍빛 복숭아꽃, 하얀 배꽃이 피고 저만치에는 진달래가 피어 있건만, 보아주는 이가 없으니 봄이어도 봄이 아닌 셈이다.

내게는 휴일인 지난 금요일 오전에 코로나 집콕이 지겨워 카메라에 매크로렌즈를 끼워들고 동네 공원을 찾았다. 산책로 길섶에는 앙증맞은 봄까치꽃(큰개불알꽃)의 파란 얼굴이 촘촘히 널려 있다. 늦게 핀 홍매화는 아직도 예쁜 자태를 봄바람에 한들거린다. 산수유가 만발하고 자두 꽃은 터질 듯 부풀어 봄이 무르익었다. 파란 봄까치꽃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꿀꽃 모양의 아주 작은 풀에 진한 분홍색으로 뭔가 돋아 있는 걸 보았다.

맨눈으로 보기 어려워 카메라를 켜고 매크로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그 작은 분홍색은 동양란의 꽃 모양새를 지닌 작은 꽃이었다. 그 좁쌀보다 작은 것이 꽃이라니, 그리고 그 작은 꽃잎에 진한 색의 점들이 몇 개 찍혀있고 꽃과 풀의 몸체에는 섬모가 촘촘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은 꽃이 그렇게 멋진 모양을 하고 있을 줄이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던 말을 실감한 순간이다. 이름을 찾아보니 광대나물이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만 사실이고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작은 세계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걸 새롭게 인식했다. 작은 꽃에도 무늬가 있고 꿀이 있어 작은 곤충이 수분을 해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작은 세계를 보면서 자연에는 인간이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질서가 있음을 생각했다. 그렇게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을 집에 와서 열어보니 약간 흔들려 완벽하지 않아 서운했지만, 자연의 질서를 엿본 기쁨은 서운함을 상쇄하고 남았다.

태양의 주위에 넓게 퍼져 타오르는 코로나 모양과 비슷하다 해서 코로나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은 이번 폐렴증 바이러스의 공식 명칭은 ‘COVID-19’Corona Virus Disease의 약자에 발생 연도인 2019년의 끝자리 19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메르스 · 사스 등 질병도 코로나 모양의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이 바이러스들은 야생동물에 기생하던 바이러스인데, 돌연변이를 통해 인간에 전염하도록 적응했다고 한다.

 

야생동물의 질병이 인간에 옮아 온 이유는 인간들이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없애서 경작지로 만들거나 야생동물을 죽여 개체가 줄고 그들이 인간과 어울려 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줄면서 숙주를 잃은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달라붙어 살 수 있도록 적응하는 돌연변이가 진행된 것이다.

이미 이러한 동물 질병이 인간에 적응한 사례는 상당히 많다. 에이즈나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동물 질병이 인간의 몸에 적응하여 대유행한 사례가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 스스로 오늘의 재앙을 불러들인 셈이니 탓하고 원망할 것도 없다자연을 파괴하여 바이러스의 재앙을 자초한 인류의 시련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고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학자들의 조언이 뒤따르는 오늘이다.

 

그런데도 인류의 자연 파괴와 환경 훼손은 그치지 않는다. 세계의 화석연료 소비의 절반을 차지했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되자 바로 기후협약을 탈퇴했다. 협약을 이행하지 않고 비용부담도 하지 않겠다는 뱃장이다. 힘이 있으니 내 맘대로 하겠다는 속물 장사꾼 근성이다. 어쩌면 자연 파괴의 실질적 주범인 미국은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거대한 우주의 질서 가운데 지구가 있고 지구의 자연은 바로 우주 질서의 일부다. 우주의 거대한 질서 가운데 지극히 작은 부분이지만, 그것을 인간이라는 종()이 함부로 흩트리고 왜곡한 일이 어떤 재앙으로 다가설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지구에 나타났던 생물 대부분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멸종했다. 종이 생기면 끊임없이 진화하고 적응하다가 지구환경에 따라 하루아침에 멸종하고 새로운 종이 생겼다.

인간이 문명사회를 이루어 환경을 극복하고 영원히 군림할 듯하지만, 스스로 환경을 파괴하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멸종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는 여러 차례 나왔다. 지금 당장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유가 바로 자연 파괴에 따라 야생동물의 질병이 인간을 숙주로 삼기 시작해서 생긴 일이라 하지 않는가

앞으로 코로나-19보다 몇 배 더 강력한 바이러스도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카메라를 통해 작은 식물의 세계를 보고 놀랐던 일처럼 자연에는 우리 인간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아귀가 맞아 돌아가는 거대한 힘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했다. 그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 균형을 잃으면 자연은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야생동물의 서식처를 인간이 침범하자 인간의 개체와 활동 범위를 줄여 균형을 맞추려는 자연의 대응이 아닐까 싶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인류는 자연의 하나일 뿐,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 하찮고 작은 존재인 것을 자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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