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느티나무
  • 전주일보
  • 승인 2020.03.1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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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느티나무는 작은 것을 상징하지 않는다. 또 옹졸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크고 높고 넓은 것, 포용력을 상징한다. 천 년을 살되 설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바위틈에 버티고 서서 바위를 갈라놓기도 하고 벼랑에 매달려 기울어진 상태에서도 끄떡없이 큰 나무로 자란다. 평지에 선 나무는 열 길, 스무 길 하늘로 솟고 열 평 스무 평 넓은 그늘을 거느리는 웅장함을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 나무의 설 자리를 마을 어귀나 마을의 한가운데에다 잡아주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선택 받은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마을이면 몇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다. 사람들이 마을마다 일부러 심었는지 아니면 느티나무가 있는 곳을 택하여 마을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래 전부터 사람들과 가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느티나무를 정자나무라고도 한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엔 대부분이 정자가 있다. 나무의 그늘만으로는 부족했을까. 아니면 나무 밑 바위만으로는 앉을 자리가 불편했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나무의 자태에 비하여 구색을 맞추는 멋을 부려본 것일까. 아마 멋부림, 그것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은 아늑하고 정다워 보인다. 고향 같은 느낌이 든다. 멀리서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만 바라보아도 나무 아래 흰옷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나 힘센 자나 약한 자나 구별이 없다. 따로 정해 놓은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늘이 넓고 깊어서 누구든지 아무 곳이나 자리를 잡으면 된다. 나무 아래에서 뿐만 아니라 나무 위에서도 느티나무는 차별을 두지 않는다.

작은 개미나 매미로부터 까치나 부엉이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없다. 심지어는 새둥지의 새끼를 향하여 혀를 날름거리는 구렁이에게까지도 관대하다. 뱀이라고 해서 결코 가지를 흔들어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다. 아래로는 개미의 왕국이요, 위로는 새들의 낙원이며, 안으로는 다람쥐의 궁전이다.

느티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 또한 풍성하다. 마을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을 그 밑에 가면 다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거나 듣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느티나무 밑으로 나온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그 때마다 얘깃거리는 자꾸자꾸 늘어간다. 그 이야기가 어찌 어제 오늘의 얘기뿐이겠는가. 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무는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이 나무 아래에서 벌어졌던 사건이나 몰래 소곤거렸던 얘기까지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말이 없다. 결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찢어질 듯한 심정으로 나무를 부여안고 울부짖는 자에게만 우우우는 몸짓으로 얘길 해 준다. 그는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너보다 더 아픈 마음으로 수없이 울어왔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지 않느냐?”

느티나무는 한국인의 나무다. 조선의 나무다. 민초들의 끈질긴 기질과 한국 여인의 너그러움이 융합되어 있다. 우리 민족과 더불어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 몸에 은연중 느티나무의 기질이 깃든 것이리라.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다른 나무처럼 뿌리째 뽑혀 벌떡 넘어지는 일이 없고, 아무리 큰 바위 틈도 뚫고 들어가 뿌리를 내린다. 가히 불굴의 기질이다. 많은 가지와 넓은 그늘로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주고 많은 것을 남을 위해 주고 싶어 하는 건 흰옷 입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느티나무를 괴목이라고도 한다. 공예품 가운데 괴목 뿌리를 잘 다듬은 것은 최고의 명품으로 꼽는다. 괴목을 재료로 만든 가구는 최고급 가구에 속한다. 나무의 질이 단단하여 트지 않고 색깔이 고와 누구나 욕심낸다.

괴목의 맑고 깨끗한 색깔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뿌리에서 나오는 불그스름한 빛깔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졌을 것이다. 끈질긴 삶을 영위해 온 억셈에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너그러움에 있을 것이다.

큰 나무에서 나오는 넉넉한 너그러움과 밑동이 잘리고 등걸만 남아 아프고 쓰린 상처 속에서도 다시 새순을 내 보내는 인고의 아픔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옹이가 되어 오묘한 빛깔로 승화된 것일 게다. 득도자의 사리 같은 것이리라.

그래서 느티나무는 죽어서도 결코 한줌의 재나 흙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밑동만 남아 관솔로 굳어지고 옹이로 굳어진 뿌리들이 부잣집 응접실의 탁자나 이름 있는 건물의 현관에 품위 있는 골동품으로 남는다.

나의 노년도 저 느티나무처럼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풍성히 가꾸어서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를 유지할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훗날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한 사람으로 남기를 소망한다. 붉게 물든 뿌리의 오묘한 흔적은 아니어도 작으나마 자취를 남길 수 있기를 염원한다.

요즈음 도시의 가로수로 느티나무가 늘어간다. 성장이 더딘 느티나무를 가로수로 택한 까닭이 무엇일까? 공해에 강한 뜻 말고도 천 년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라는 뜻은 아닐지. 자꾸만 조급해 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성급하게 굴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고, 갑이나 을이나 다 같이 손을 잡으라고 일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백 년을 한 자리에 발 묶였어도 결코 불평하지 않으며 수십만의 잎을 거느렸어도 거만하지 않는 느티나무, 웅장하면서도 너그럽고 억세면서도 여유가 있는 그 깊은 마음을 배울 일이다. 느티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무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보고 마음을 가다듬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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