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목민관(牧民官) 아닌 일꾼을 뽑았다
시민은 목민관(牧民官) 아닌 일꾼을 뽑았다
  • 전주일보
  • 승인 2020.02.2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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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코로나-19가 종교집회를 매개로 확산 일로에 있다. 여기저기 온통 코로나-19로 도배되어 오늘만이라도 다른 시선을 생각하기로 했다. 단체장을 비롯한 공직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즈음이기에.

우리나라 공직자의 공통적 특성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잘못을 알면서도 갖가지 구실을 끌어대서 내 책임이 아니라고 버틴다. 여론에 몰리고 진실이 드러나도 변명만 늘어놓을 뿐,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과하면 체신이 떨어지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선거직이나 시험을 통해 임용된 모든 공직자는 국민의 머슴이고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주인을 물로 보고 주인 위에 군림하려 한다. 우리의 정부조직이나 지방자치 조직은 아직도 일본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기둥을 세우고 이것저것 다듬어 사용하기 때문일 듯하다. 필자가 몇 번이나 지적했듯이 아직도 우리 행정조직에는 사무관, 이사관 따위의 명칭이 있다. 왕이 내린 벼슬이 아닌데, ()이 될 수 있는가?

거기다 시민이 선출한 시장들이 모여 스스로 목민관(牧民官)’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버젓이 활동한다. 고을을 다스리는 관리를 일컫는 목민관이라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우매한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목민관이라는 단어는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공무원은 단어 그대로 공무를 맡아 하는 사람이다. 국민을 위한 서비스 맨이다.

일본은 왕이 있어서 왕의 신하일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국민주권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공무원이 국민의 뜻에 따라 일하는 나라다. 선거를 통해 큰 머슴과 작은 머슴들을 고른다. 그렇게 선출한 지방자치단체장이 감히 스스로 목민관이라니 기가 찰 일이다. 그런 건방진 생각을 지니고 있으니 쉽게 사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부안군 쓰레기 매립장의 사용 기간을 연장하고 소각장을 새롭게 만든다는 계획에 줄포면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기사가 본지에 실렸다. 주민들은 부안군이 쓰레기 매립장 사용연기와 소각장 건설에 관하여 주민과 사전 합의가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군이 영향권 내의 일부 주민과 합의했을 뿐, 반경 2Km 이내의 줄포리 주민 등과는 전혀 논의조차 하지 않은 사실에 분개했다.

법에 정한 거리 내의 주민 상당수를 무시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합의하라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안군은 여전히 사태를 지켜보면서 사과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 주민을 무시하고 자행한 행정에 대해 진정 어린 사과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을 풀어나가는 태도가 가장 빠른 답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지난 216일부터 전주시와 전북 일원에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밤새 눈이 쌓이자 전주 시내버스들이 노선운행을 중단하거나 결행이 많았다. 17일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눈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폭설로 운행하지 않는 버스 상황은 전혀 안내되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에 벌벌 떨다가 택시를 타거나, 외출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오후에 날씨가 풀려 시내에는 눈이 다 녹은 시점까지 계속됐다. 눈이 녹아 운행에 아무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 되어도 일부 버스는 차고와 회차지에 세워두고 운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심 구간만 운행하는 버스도 연속 세 차례 운행 예정 시간에 출발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교통과에 항의하면 알아보겠다는 답변이 끝이었다. 이튿날 본지의 사설을 통해 이 사실이 지적되자 사과 한 마디 없이 버스정류소 시정 홍보란을 통해 미운행 구간을 성의 없이 알렸을 뿐이다.

호주에서는 1998526일을 사과하는 날로 정했다. 호주에 백인들이 들어와 숱한 원주민들을 죽인 사실을 사과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그리고 매년 그날이면 모든 단체와 기업, 가족과 개인들이 각각 지난 잘못을 되돌아보고 사과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그날의 사과를 통해 맺힌 것을 풀고 새롭게 나아가는 멋진 화해와 용서의 전통이 생긴 것이다.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치면 시민들에 알랑거리다가 당선되고 나면 벼슬아치로 둔갑하는 단체장, 상머슴으로 일하겠다던 그들의 약속은 간데없다. 그런 귀하신 벼슬아치가 하찮은 시민들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는 건 당연지사(?). 목민관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 시민은 기르는 양떼 정도에 불과한 존재인 듯하다.

전북의 자랑거리라는 삼락 농정은 아무래도 그 근본이 군자삼락(君子三樂)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 그 삼락을 농정에 끌어들였을 것이다. 농업행정은 농민들의 농업을 돕는 서비스다. 그런데 지난날 사대부의 아랫것이었고 농노였던 농민을 군자의 시각에서 다스리겠다는 뜻으로 삼락농정이 아닌가 싶어 모골이 송연하다. 나라의 주인은 농민을 포함한 국민이다.

단체장들은 잘한 일만 찾아 홍보하고 치적을 나열하는데 바쁘다. 적어도 좋은 단체장이라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그동안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반성하고 찾아서 주인인 시민 앞에 사과하며 다시는 반복하여 잘못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더 친밀해지고 발전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행정은 서비스이고 봉사이며 헌신이다. 다스리는 행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첨단과 미래는 벼슬아치의 묵은 발상에서 추구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는 서로 이해할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저마다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니 코로나-19가 쉽게 파고 든 것이다.

머슴들이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나라가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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