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받은 생명의 시간
덤으로 받은 생명의 시간
  • 전주일보
  • 승인 2020.02.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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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고 운/수필가
김 고 운/수필가

지난달 23,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다. 집에 돌아왔는데 몸이 찌뿌듯한 게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감기나 몸살을 앓아 본 일이 없는데 갑자기 불편하다. 더구나 최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뉴스가 있었던 터라 께름칙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일은 그날 오후에 한가하여 당구장에 갔는데 명절을 앞두고 사람이 많았고 마스크를 쓴 사람도 보였던 생각이 뒤를 잡아당겼다.

몸이 나른하고 피곤하여 일찍 자리에 누웠다. 얼마쯤 지났을까. 잠에서 깨었는데 으스스 추운 느낌과 열이 나는 듯싶고 몸이 무겁다. 아무래도 감기라는 생각이 들어 약장을 뒤져보니 오래 전에 지었던 감기약이 두어 가지 보인다. 대충 한 봉을 찢어 털어 넣고 다시 누웠다. 대략 감기 정도는 해열제 몇 번 먹으면 그냥 넘어갔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창밖이 희붐한 시간에 잠이 깼다. 춥고 몸이 여기저기 쑤시는 통증이 일어 괴로웠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칠 감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따뜻한 옷을 챙겨 입고 이불을 둘러쓰고 있어도 한기가 느껴진다. 체온계를 귀에 꽂아 보니 37.8, 제대로 걸렸다는 생각에 다시 약장에서 해열 진통제를 찾아 먹고 누웠다. 그러면서 혹시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가슴에 치밀었다.

생각해보니 그날부터 연휴이고 설날에는 아이들이 세배를 하러 올 터이다. 병원엘 갈까 생각했지만, 연휴라 당번병원을 알아봐야하고 전염병이 도는 참이라 귀찮을 거라는 생각에 그냥 버티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세배는 나중에 받기로 하고 아무도 오지 못하게 했다. 큰딸이 약국에서 약을 사갔고 왔지만 집에 들이지 않고 약만 받고 보냈다.

그리고 4일 동안 지독한 감기를 경험했다. 잠들지 못할 만큼 고통스럽고 몸부림을 치면서 버티다보니 몸에서 땀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몸이 젖도록 땀을 흘리고 나니 코가 뻥 뚫리고 비로소 통증이 사라졌다. 38.5까지 오르던 열도 내리고 살만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지 몸이 붕 뜬 것처럼 힘이 없고 입맛이 없다. 모든 음식이 소태처럼 쓰고 아무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동네 병원에서 뒷단속을 하느라 약을 지어먹고 몸을 추슬러 2월에 들어서야 몸이 제자리를 잡아갔다. 주변에선 아마도 A형 독감인 듯싶다고 했지만 검사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앓는 내내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을 맴돌던 상념들이 떠올랐다. 내게 주어진 시간, 그 시간이 곧 생명이고 존재라는 걸 새롭게 인식했던 4일간의 고통을.

지극한 통증을 견디며 죽음이라는 생의 마지막 문을 생각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그냥 이대로 죽어도 별로 아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병원에서 되레 병이 옮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다가 삶의 끈을 놓친다 해도 좋을 만큼 살았고 내가 없으면 아이들이 조금 서운할지 몰라도 세상에서 내가 꼭 필요한 곳이 없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라는 생명체는 무형의 원소나 에너지로 존재하던 것들이 실로 우연히 생명의 씨앗에 깃들어 유형의 존재가 된 것이다. 씨앗처럼 작은 존재가 자라서 또 다른 생명체를 생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낸 뒤에 다시 원래로 돌아가는 그 윤회(輪廻)의 길인 것을 생각했다. 내 부모와 형제, 사랑하던 이들이 먼저 간 그길, 거부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그 끝없는 길을 느끼면서 통증은 괴로웠지만, 조바심은 없었다. 드넓은 우주에 작은 원소로 돌아가는 길, 우주의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처럼 본디의 보이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정도 통증에 죽지 않는다는 걸 짐작했기에 그 아픔을 견디는 재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진통제로 어느 정도 줄어든 통증이니 견딜 만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저질렀던 무수한 잘못과 그 잘못들을 사과하지 못한 일, 용서받지 못한 일이 아팠고 괴로웠다. 그런 벌을 받느라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통증이 되레 가볍다고 느꼈다.

그 가운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용서받아야할 잘못을 챙겨보고 용서해줄 사람들이 있을지 생각하면서 너무 오랜 시간 내 멋대로 산 나를 자책했다. 외골수에 편벽한 생각으로 남을 생각할 줄 모르던 이기적 삶을 반성하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저지르고 뒷감당하지 못한 일까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이던가.

이제 만 76년을 넘어서 77년째 이 세상에 남아있다. 우리 나이로는 희수(喜壽)인 셈이다. 참 오래도 살았다. 젊은 시절에 생각한 내가 살 나이는 60년 정도였다. 60이 넘으면 아무런 재미도 없을 것이고 기력도 달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터이니 그 시기 쯤에 세상을 뜨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60살 즈음에 아내의 건강에 이상이 왔다. 그 뒤로 15년 동안 아내의 병을 낫게 하겠다고 매달리고 간병인으로 살다가 보니 70 중반에 이르렀다. 그동안 나이를 먹는지, 내가 살만큼 산 것인지 느끼지도 못하고 살았다. 어마두지에 아내가 먼저 떠나고 나서야 내 처지를 돌아보고 다시 세상과 만났다. 지금 사는 시간은 덤으로 얻은 셈이다.

홀로노인이 되어서 글을 써보겠다고 연구 동아리도 만들고 여기저기 글을 내기도 하면서 마음을 붙이는 노력을 하며 산다. 아직 팔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번에 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하면서 지난시간을 돌아보고 잘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조금 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 아프니까 성숙 해진다 라던가?

헌데, 이제야 철이 든들 이 노구에 무얼 하겠는가. 오래지 않아 형체를 잃고 돌아갈 처지에 과한 욕심이지 싶다. 이 나이에야 아직 철부지임을 안 것이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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