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로 판명된 ‘기금운용본부 지리학’
오류로 판명된 ‘기금운용본부 지리학’
  • 전주일보
  • 승인 2020.02.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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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가짜뉴스가 판치는 시대, 팩트 체크는 필수다. 가짜뉴스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서양이 따로 있지도 않다. 오죽했으면 한 해의 신문을 모아 통독한 독일의 18세기 물리학자이자 풍자문학가 리히텐베르크(1742~1799)가 진실이라고는 3%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을까?

검증되지 않고 심심찮게 터져 나왔던 보수 중앙지들의 전북 관련 기사 중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입지 문제가 있다. 국민총생산(GDP)40%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주체가 한국 경제의 변방인 전북혁신도시에 입지하고 있는 탓에 수익률 확보에 원천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논지들이다.

전북을 제3 금융 중심지로 지정하는 정책을 반대하는 기사도 지면들을 장식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북 이전과 연계된 정책이라는 점에서 같은 연장선이다.

마침내 기금운용본부 전북 이전 3년 만에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 국민연금의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과 수익금이 역대 최고치로 나타났다. 11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19년도 연간 기금운용 수익률은 11.0%로 잠정 집계됐다. 잠정 수익금은 무려 70조원이다.

1988년 기금을 설치한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연평균 누적 수익률이 5.70%, 누적 수익금이 357조원인 것과 현저하게 대비된다.

#‘ 전주 기금운용본부'의 역대 최고 수익률

국민연금의 지난해 수익률은 검정되지 않은 가설을 근거로 한 지역의 이익을 해치는 언론의 추측성 기사가 얼마나 반사회적인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선의로 생각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국민의 노후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적 보험이다.

일정한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올려도 2057년이면 기금이 고갈된다는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도 나와 있다. 이런 터에 수익률 하락은 국민들의 노후 생활의 마지막 안전판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전북 이전으로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단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리고 가설의 진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검정이 필수적이다. 가설검정은 연구자의 주장에 경험적 합리성이 있는가를 검토하는 통계적 방법이다. 따라서 비교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는 데이터가 축적될 때까지의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연후 전과 후의 통계를 비교해 연구자의 주장인 대립가설(대안가설)이 성립하는지, 대립가설과 배반적인 귀무가설(영가설)이 성립하는지를 알 수 있다.

가설검정에서 영가설(귀무가설)이 참(truth)인데도 영가설을 기각하면서 대립가설을 수용하는 잘못을 범하면 제1종 오류가 발생한다. 형사재판으로 비유하면 무죄인 사람을 유죄로 만드는 판결이다.

반면 영가설이 참이 아닌데도 영가설을 수용하는 결정을 하면 제2종 오류를 범하게 된다. 형사재판으로 비유하면 유죄인 사람을 무죄로 판결하는 것이다. 이를 기금운용본부 전북이전에 대입하면 지방으로 이전함으로써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사는 대립가설에 해당한다. 전북으로의 이전이 수익률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면 영가설이 성립돼 그 기사는 가짜뉴스로 판명된다.

문제는 그동안 전북이전을 부정적으로 보도한 기사들의 진위를 판명할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수 언론들의 비판 기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북 이전법의 국회를 통화한 2013년과 이전이 진행된 2017년을 전후로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3년이 지나 그 기사들의 가짜여부를 판별할 데이터나 어느 정도 확보됐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가 전북으로 이전한 뒤 20177.26%, 20180.235%, 201911%의 수익률을 올렸다. 2018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이는 세계 증시의 약세 장세 탓으로 다른 많은 국가들의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3년 평균을 종합하면 통산 평균 수익률 5.7%를 넘는 양호한 실적을 거두고 있으며, 특히 가장 최근인 지난해는 역대 최고치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또 국회 예산 정책처 재정추계위원회가 가정한 2018~2020년 평균 수익률 4.9%를 웃도는 실적이다. 종합하면 전북이전이 수익률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중앙언론들의 기사는 제1종 오류를 범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서울과 전북의 정의는 동일해야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를 근거로 기금운용본부의 전북이전을 부정적으로 예단한 언론들의 보도 태도는 임마누엘 칸트(1724~1804)인간지리학을 연상케 한다. 칸트는 국경을 초월한 인권을 주장한 세계시민주의, 코스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을 주장한 세기의 지성이다.

그로 인해 지구촌 인권이 한 단계 성숙하는 토대가 구축됐다. 그런 그도 인종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지 못한 인식의 사각지대를 드러냈다. 세기의 지성도 그러했으니 우리 중앙언론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3 금융중심지 지정이다. 3 금융중심지 지정은 20177월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공약이다. 선정 절차는 공모지만 사실상 전주시가 내정돼 있다. 전북이 혁신도시 이전 1순위로 지정한 토지개발공사를 경남에 내주고 지역개발 파급효과가 훨씬 떨어지는 국민연금을 받아들인 데 대한 원상회복 차원의 배려다.

3 금융중심지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급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시즌2와 연결된다. 계획이 추진되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이전 후보지가 그곳으로 결정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산업 경쟁력을 우려하는 중앙언론들의 보도 속에 지난해 3월 제3 금융중심지 지정을 유예하는 용역 결과가 나왔다. 중앙언론의 보도 태도 이면에서 기금운용본부와 같은 맥락을 보게 된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정의도 달라진다고 누군가 말했다. 국민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이 국가의 정의다. 서울 언론들의 정의는 호남선을 타고 내려오면 달라지는가? /이현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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