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대야
놋대야
  • 김규원
  • 승인 2020.01.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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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이 용 만/ 수필가
이 용 만/ 수필가

  세수를 한다.

  두 손 가득 물을 담아 얼굴에 쫘악 끼얹는다. 거푸거푸 끼얹어 씻는다. 세수를 마친 뒤에도 한참이나 손을 담그고 넓고 두터운 대야 언저리를 바라본다. 어머니께서 밥솥에다 따끈하게 데워 주신 세숫물을 버리기가 아깝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대야에 배어있는 아버지의 체취 때문인 것 같다.

  놋대야다. 참 크고 무겁기도 하다. 두들겨 만든 방짜유기라서 매끈하지 않고 두드린 자국들이 잘게 나 있다. 어머니는 언제 이렇게 말끔하게 닦아놓으셨을까. 보얗게 윤이 나 있다.

  놋대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이 놋대야는 아버지 전용 세숫대야였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는 줄곧 선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렸을 적에 우리는 이 대야를 쓰지 못했다. 놋대야는 언제나 우물 한복판에 버티고 있었지만, 우리 형제들은 감히 거기다가 세수할 생각을 못 해봤다. 어머니께서 엄히 단속하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쓰시는 대야에다가 아이들이 버르장머리 없이 세수하면 못 쓴다고.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기침 소리는 집안을 쩡쩡 울렸다. 어쩌다 잘못하여 놋대야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뗑그렁! 큰 소리를 냈듯이, 아버지는 참 엄한 분이셨다. 조금만 잘못해도 불호령이 내렸다.

  그 무서움 때문에 그때 누나 친구들이 너나없이 서울로 달아나 공장엘 다녔고, 명절 때에는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굽 높은 뾰족구두를 신고 내려왔어도 누나들은 감히 따라나설 생각조차 못 했다.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하고 서울로 갔던 누나 친구들이 서울 사람 만나 잘 살면서 자가용을 타고 고향엘 다니러 오고, 양반댁 맏며느리로 시집간 누나는 일에 쪼들려 얼굴에 화장 한 번 할 새가 없노라고 푸념을 하면서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어도 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계셨다. 그토록 서슬이 퍼렇던 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못 하시고 담배만 피워대는 모습이 안타까워 살며시 일어나 모퉁이로 돌아갔을 때, 거기 우물가에는 누나들이 데리고 온 조카들이 아버지의 놋대야에 들어가 철벙거리며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편의주의를 선호해, 전에는 꼭 마루 위로 올라와 큰절을 올려야 했던 인사가 마당에 선 채로 꾸벅 머리만 숙이는 것으로도 인사치레가 되면서부터 우물가 중앙에 버티고 있던 육중한 놋대야가 파랗고 빨간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밀려 한쪽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나중에는 선반 위에 얹히게 되었다. 이때쯤에는 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아주 작아져 있었고,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느니,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세월 앞엔 독사도 이가 빠진다는데 놋대야도, 아버지도 어쩔 수가 있으랴. 말년에 이르러서는 아버지도 자식들에게 야단을 치지 않으셨다. 전 같으면 불호령이 떨어질 만 한 일인데도 모른 척하셨다.

  잘못하여 발길에 차이기라도 하면 뗑그렁 요란한 소리를 내어 가슴을 졸이게 했던 놋대야가 소리도 내지 않고 선반에 올라가 있듯이 아버지도 조용히 여생을 보내시려는 것인지 어쩌다 명절 같은 때에 어머니가 놋대야에다 세숫물을 부어 드리면 놋대야 꺼내지 말라며 물을 쏟아 버리고 선반에 도로 올려놓으셨다. 떨어진 가장의 권위에 대한 오기였을까. 어쩔 수 없는 세파에 대한 체념이셨을까. 아니면 잘 보관하여 자식에게 물려주시려는 것이었을까.

놋대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자꾸만 말년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 혼자만 쓰시던 놋대야가 너나없이 아무나 쓰게 되고 한쪽으로 치워졌다가 이제는 선반 위로 올라가 먼지를 부옇게 쓰고 있는 것을 바라보셨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나도 어릴 적에는 아버지의 엄격함이 원망스럽기도 했었지만, 그때 자유롭게 자랐던 내 친구들이 지금 세상살이에 애를 먹고, 서울로 간 누나 친구들이 계 놀이야 땅 투기야 하다가 쫓겨 고향에 와서 숨어 살면서 별거네, 이혼이네 하는 소문이 들려오는 요즈음에야 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운 것만은 아니었고, 집안을 다스려 온 기강이었고 자식들을 지키는 보호막이었음을 생각한다.

  나이 들어 아버지 떠나시고 혼자 살면서 나를 야단쳐 줄 사람이 없어지게 되자 한순간 자유롭다고 생각하던 내 마음에 무언가 허전함이 자리하기 시작했고, 한때의 작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 큰 후회를 부르는 일들이 잦아지면서 그때 누군가가 야단을 좀 쳐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돋아나기도 했다.

  그런 때에 아련히 그리워지는 게 아버지의 기침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놋대야의 뗑그렁! 하는 소리였다오늘따라 놋대야를 마주하고 보니 아버지의 기침 소리와 더불어 놋대야 소리가 그립다.

얘가 세수하다 말고 뭐하고 있다냐. 어린애처럼.”

어머니의 말씀에 갑자기 어머니께 매달려 어리광을 부려 보고 싶어진다.

  물을 버린다. 다 식은 물이지만 버리기가 아깝기는 마찬가지다. 놋대야를 깨끗이 씻는다. 비누칠해서 골고루 씻는다. 대야에 남아 있는 물기를 마저 털려다 아차! 대야를 놓친다. 땅바닥에 떨어진 대야가 뗑그렁! 큰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한없이 맑고 투명하다. 온 집안에 가득 찬다. 얼마 만에 듣는 소리인가. 상쾌하다.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려 온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하늘도 푸르고 공기도 맑다.

 

  이 놋대야를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보관해서 아버지 유품으로 두고 싶은데 내 말년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물려주면 아이들이 가져가려고나 할까. 요새 세상에 그걸 갖다 어디에 쓰겠느냐면서 서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할 게 뻔한데……. 그럴 바에는 어디 전통 유물 전시장 같은데 갖다 주는 게 낫지 않을까. 두들겨 만든 방짜유기이니 다소의 가치는 있을 것도 같으니까.

  귀한 놋대야에 대한 죄스러운 생각까지 겹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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