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없는 후보들을 경계한다
자격 없는 후보들을 경계한다
  • 전주일보
  • 승인 2020.01.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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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중국 혁명기의 작가 루쉰의 풍자는 그야말로 촌철살인이지만 그 중에서도 돌잔치 이야기는 압권이다.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덕담은 난무한다. 장군감이니, 재벌감이니, 큰 인물이 될 상이라고 한 마디씩 건네며 주인에게 예의를 표한다.

하지만 아직 강보에 싸인 한 살배기 아이가 뭐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말에 대해선 어떤 경우든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칸트주의자였던지 루쉰은 그 때마다 고민이었다. 가만히 있자니 예의가 아니고, 덩달아 덕담을 건네자니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루쉰의 해결책이 천하일품이다. 그저 아이를 보며 아이고, 그놈!, 아이고 그놈!”하는데, 아무 뜻도 없이 토해내는 영탄에 루쉰의 명망이 겹쳐 주인은 그 누구의 덕담보다 더 좋아라했다고 한다.

루쉰의 돌찬지 영탄사는 오늘날 전북 총선판의 관객들에게도 그 어떤 말보다 유용하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교통의 요지인 교차로에 몇 개 층을 뒤덮은 후보 홍보판이 내걸리고 평소엔 잠잠하던 카톡이 요란스럽게 울려대며 선거철임을 알린다. 선거판을 기웃거릴 일이야 없지만 몇몇 후보들과는 오다가다 안면을 쌓았고, 후보는 생면부지라 할지라도 그들의 선거캠프에 지인들이 있을 수 있으니 울려대는 카톡을 마냥 외면할 수 없다. 그 중에서 마음이 쓰이는 후보가 있으면 간단한 답신을 한다. “아이고, 복 받으세요!”

 

도덕적 흠결 덕지덕지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전북도민의 대표가 되겠다는 후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과연 국회의원 감인가 하는 거부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만그만한 인물들이 4년 마다 무대에 나와 부질없는 희극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짜증이 나기도 한다. ‘정치인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라는 처칠의 진단을 상기하면 도민을 어떻게 보길래하는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없지 않다.

특히 올 총선은 그 정도가 어느 때보다 심하다. “선한 정치가란 정직한 도적만큼이나 모순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한 미국 작가 맥켄(H. L. Macken)의 말을 떠올리며 애써 감정을 추슬러 보지만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인물들이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을 둘러싸고 터져 나왔던 스캔들을 기억에서 소환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봉침과 원룸 사건이야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치부해도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상가 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고, 동생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은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은 혐의만으로도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있다.

아직 유무죄가 판명되지 않았지만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한병도 전 정무수석에게도 정치적 도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모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감안할 때 본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진출하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과연 뒷받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들의 이지러진 과거사를 상기하면서 정치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치 참여는 정의로운 인간을 만든다. 인간은 완전할 때는 최고의 동물이지만 법과 정의와 분리되면 모든 것 중에 최악이다. 따라서 실행될 채비가 갖춰진 부정의(injustice)는 더욱 위험하다. 인간은 팔(arms)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회제도를 포함한 도구를 의미하는 은 원래 지성과 덕으로 사용돼야 하지만 인간은 최악의 목적을 위해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거판은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전북의 현실은 갈수록 암담해지고 있다. 지난 연말 발표된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결과는 전북의 경제가 전국 최하위에서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전북의 지역내총생산(GRDP)을 보면 전국의 2.68%17개 시도 중 16위에 처져 있다. 같은 해 전북의 인구 비중이 전국의 3.51%임을 감안하면 1인당 GRDP가 전국 평균의 76%라는 계산이 나온다. 전국 최고인 울산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42.74%에 불과하다.

전북의 현실은 전북 정치인들의 정통성을 웅변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선출직 공직의 정통성은 일반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와 효율성을 겸비할 때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정통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거법을 준수하며 당선된 후 국민의 대표로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면서 한편으론 주민의 대표로서 지역발전을 추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낙후 상태를 전혀 개선시키지 못한 전북의 국회의원들은 정통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지역주의 투표와 프랙탈 법칙

 

이는 지역주의 투표에 매몰된 전북도민의 투표 양식에 대한 심각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1987년 선거법 개정으로 국회의원 선출방식이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전북도내 국회의원 당선자는 90% 이상 지역에 기반 한 정당의 후보로 구성되고 있다. 전북을 포함한 호남의 일당 지형은 영남과 함께 한국정치의 고질인 지역주의 정치지형의 양대 축을 형성하면서 프랙탈의 법칙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물리의 세계에서 부분의 조직은 전체를 닮고 있다. 반면 우리의 지역주의 정치는 전체적으로는 여야가 균형을 이루지면 영호남에선 각각 일당정치로 나타나고 있다.

물리의 세계에서 프랙탈의 법칙에서 벗어난 개체는 존재의 근거를 잃는다. 우리 정치에선 부패와 무능을 보게 된다. 도덕적 흠결로 얼룩진 일부 후보들이 4·15총선에서 다시 지역주의에 기대어 국회 입성을 꿈꾸는 모습 또한 그 연장선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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