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 김규원
  • 승인 2019.12.29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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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20191230.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 지나갑니다.

해를 보내는 마음은 항상 무엇이라고 딱히 집어내기 어려운 아쉬움과 함께 알맹이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허전함을 동반합니다. 이런 마음, 이런 시간을 늘 겪으면서도 다시 이때가 되면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듯하여 마음을 다잡을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은 새해 첫날을 맞고 나서야 조금 중심이 잡힐 것입니다. 서녘 하늘에 붉게 타던 해가 뉘엿뉘엿 모습을 감추고 햇귀만 남아 있는 이 시간, 이제 마지막 한 번 해가 뜨고 지면 새해가 됩니다.

이 가슴 가득한 아쉬움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요? 사실, 우리가 한 시간, 하루, 이틀이라고 세는 시간이라는 게 우리끼리 정한 셈 수일 뿐, 우주 만물은 그저 끝없이 변할 뿐이지요. 굳이 시간이라는 구분을 하고 날짜를 셈하는 건 우리끼리 다툼을 가름하고 자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변화 속에 우리가 늙어가고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나와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순환의 한 분자로 세상에 잠시 머물었다가 가는 인생.

그 찰나를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그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경쟁하면서 다른 이를 밀치고 끌어 내리며 아귀다툼을 마다하지 않는 치열한 싸움을 계속합니다. 어떤 이는 이런 경쟁을 두고 우리 안에 있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더 많은 인자를 퍼뜨리기 위해 끝없이 진화하면서 저지르는 일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사악한 인간 본성을 유전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변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악하다고 말하는 그 생각도 지금 우리의 이성으로 판단하는 일일 뿐, 야생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런 행동이 생존을 위해 당연하다는 걸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숱하게 보았습니다. 오늘도 우주 저 먼 곳에서는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고 수명이 다한 별들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거나 폭발하여 소멸합니다. 그 거대한 질서가 진행되는 가운데 좁쌀만큼의 비중도 차지하지 못하는 지구에서 우리 인간이 정의나 진리를 말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인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난 일을 돌아보고 현재를 조망해보는 일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여기저기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돈을 모아 전달하는 사람들, 인재 양성을 위해 장학금을 내놓는 사람들, 병든 이웃을 위해 치료비를 후원하는 사람들의 온정이 넘칩니다. 온정을 베푸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쓰고 남는 이들이라고 볼 수 없는, 자기가 쓸 돈을 줄이고 아껴서 남을 돕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기업가들이 세금공제를 위해 내는 수억 원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닌 돈을 냅니다.

해마다 연말에 전주 서노송동 사무소 근처에 지폐와 동전을 세지도 않고 박스에 넣은 채 보내고 전화로 알려오는 얼굴 없는 천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이가 보내오는 돈은 아마도 가게나 어떤 사업을 운영하여 번 돈을 조금씩 모아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5천여만 원을 한해에 모으는 일은 모든 씀씀이를 줄이지 않고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돕습니다.

지난날 이 나라 최대의 곡창이던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전주의 인심은 푸근했습니다. 대갓집이 아니어도 밥을 지을 때 혹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밥 세 그릇을 더 지어서 남겨두어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손들이 전주에서는 배를 곯지 않았습니다. 나만 아니라 남을 위해 예비하는 마음을 가진 전주의 넉넉하고 착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척박한 땅 경상도에 살던 사람들은 춘궁기가 되면 전라도로 머슴살이를 오거나 부녀자들은 방물장사에 나섰습니다. 머슴살이 온 경상도 사람들은 드넓은 호남평야를 보며 저 넓은 땅 가운데서 우리 논을 어떻게 찾느냐고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논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받은 새경과 곡식 가마니를 지고 고향에 돌아가 식구들을 먹였습니다. 그들이 살던 안동지역은 조선왕조를 손에 쥐고 흔든 양반들이 군림했을 뿐, 서민들은 전라도의 덕으로 연명했습니다.

그런 땅이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모든 경제개발 정책의 중심지가 되어 급성장을 시작했고 40년 군사독재 기간 내내 그들이 중요부서의 자리를 모두 차지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진행되는 지역편중이라는 새로운 악습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날 그들을 먹여 살린 전북에는 적자농업을 떠넘겨 시간이 지날수록 피폐해 졌습니다.

토목건설공사 업체를 위해 멀쩡한 갯벌을 훼손하며 새만금 방조제를 막은 지 30년이 다 되어도 아직 매립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바닷물만 출렁입니다. 주민들은 차라리 방조제 수문을 개방하여 갯벌을 살리고 수자원을 보호하라고 외칩니다. 전북에는 일부 정부 투자기관이 이전해 왔지만, 그중 쓸만한 기관들을 경상도로 가져가려는 획책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새로운 먹거리라는 탄소산업도 갖은 수단으로 방해하며 그 중심을 경상도로 가져가기 위해 안간힘입니다. 그들의 획책을 막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우리 전북이 이대로 좌절의 땅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주가 변하고 인류 역사가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하듯이 우리가 지금 당하는 현실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날 우리에게서 얻어먹고 살던 그들이 지금은 지금 은혜를 잊고 우리를 핍박하지만, 우리는 다시 그들에게 한 그릇 밥을 베풀 수 있는 반전의 역사를 써야합니다.

지는 해는 잊고 떠오르는 해를 생각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전주일보 독자 여러분! 기해년을 보내듯 좌절의 역사는 흘려보냅시다. 그리고 경자(庚子)년 새해에 뜨는 해를 보듬고 힘차게 떠올라봅시다. 전주일보는 여러분의 편에서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해 내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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