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부지깽이
내 인생의 부지깽이
  • 전주일보
  • 승인 2019.12.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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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이 용 만 /수필가
이 용 만 /수필가

부지깽이 하나 가지고 싶다.

잠시 쓰고 버리는 부지깽이가 아니라 내 인생 길에 동반할 부지깽이 하나 가지고 싶다. 굵기도 길이도 딱 맞아서 내 손 안에 착 안기는 부지깽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어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부지깽이. 특별히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고 대접할 필요도 없으며, 보관할 장소를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만만한 물건. 행여 없어진다 해도 별로 아깝지도 않으며 찾으려고 애쓰지도 않는 부지깽이, 그런 것 하나 가지고 싶다.

 

부지깽이는 불을 땔 때에 아궁이의 불을 헤집는 막대기다. 필요하면 아무 막대기나 꺾어서 쓰다가 아무 곳에나 팽개치다시피 던져놓는 막대기다. 그래도 그것 없이는 불을 제대로 땔 수 없는 꼭 필요한 물건이다.

부지깽이는 하찮은 물건이지만 쓸 수 있는 용도는 참으로 많다. 불을 땔 때에 아궁이 속을 헤집어 주면 불이 활활 잘 타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 말썽부릴 때, 두리번거리다가 제일 쉽게 잡아 혼내줄 수 있는 물건이며, 닭이나 개가 함부로 부엌으로 들어오면 탁! 때려 주기도 하는 물건이다. 때로는 쥐가 나오면 죽도록 패주기도 하는 물건이다.

부지깽이는 없어져도 그것으로 그만이다. 구태여 어디로 갔는지 찾으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아무 막대기나 적당한 놈을 다시 골라서 쓰면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지깽이만큼 내 손에 딱 맞는 물건도 드물었던 것 같다. 길이나 굵기가 내 손에 딱 맞았다.

부지깽이는 나의 전유물이 아니고 어머니의 전유물이었다. 어머니가 만들었고 어머니가 쓰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맞는 것이었다. 굵기도 길이도 늘 달랐는데 굵으면 굵은 대로, 가늘면 가는대로 나에게도 맞았다. 길면 중간을 잡고 썼고 짧으면 끝을 잡고 썼다.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었다. 어찌하여 생긴 것도 늘 다르고 볼품도 없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일까. 그래서 내 마음대로 쓸 수가 있었을까. 그런데 그것을 한 개도 남겨놓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하나쯤 남겨 놓았더라면 아주 귀한 물건이 되었을 것인데 그 생각을 미처 못 하였다. 그렇다고 지금 막대기를 불에 태워서 억지로 만들어 두기도 그렇다.

 

오랫동안 부지깽이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골 친척집에 가서 야외에 놓여 있는 솥에 불을 지필 일이 있었는데 부지깽이가 없어 곤란했다. 그 때에야 오랜 동안 잊고 있었던 부지깽이가 생각났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너무도 오랫동안 그것을 잊고 있었다.

! 그랬구나. 내가 너를 얼마나 만만하게 내 맘대로 잘 썼는데 이제야 생각이 나는구나.’

흔히들 만만하게 쓸 수 있는 것을 비유하여 종지 부리듯 한다고 한다. 물을 떠먹는 작은 바가지인 종지는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물건이다. 나도 세상을 살면서 나를 종지 부리듯 부려먹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 때에 그 사람이 자네를 종지 부리듯 부려먹었었지. 그런데 그 뒤로 자네를 좀 돌봐주던가?”

그런데 그 때는 내가 종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 별로 돌보아주는 일도 없었다. 그래도 원망이나 서운함이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때가 내가 가장 왕성하게 일을 하던 시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종지보다 더 만만한 게 부지깽이다.

 

요즘은 나이 든 부모들이 부지깽이 신세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필요하기는 한데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부모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다지 아깝지도 않고 찾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애완용 강아지보다 서열이 뒤에 있는 사람들. 모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부모님이 몇 살까지 살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60살이라고 답한 학생들이 제일 많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요즘 내 인생이 외롭고 쓸쓸해진 것은 부지깽이를 버린 탓이 아닐까. 그 부지깽이를 간직하지 못함으로써 지니고 있어야 할 많은 것을 잃었다. 소중하지 않는듯하여 아무 생각 없이 버렸던 것들. 언제나 내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것들. 그것들이 소중한 것이었고 당장 필요하지 않아서 그냥 버렸던 것들이 소중한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어릴 때의 친구들. 그 때는 소중한 줄을 몰랐다가 후에야 소중함을 알았던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은 나의 가족들. 그리고 성장하면서 만났던 동창생들. 인심 좋았던 이웃 사람들……. 그 사람들,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줄만 알았다가 놓친 사람들이다.

 

지금 나에게 부지깽이 같은 사람이 누구일까. 만만하게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부지깽이 같은 이를 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가장 소중한 것을 지닌 부유한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 부지깽이 같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부지깽이가 되어주면 어떨까. 나를 종지 부리듯 하였다고 좋지 않게 말하던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가 오히려 나의 전성기였던 것처럼 누군가의 부지깽이가 되어보면 어떨까.

누군가가 나를 부지깽이 부리듯 부려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도 하나의 행복일 것 같다. 그 사람만은 내가 필요하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일 테니까.

부지깽이 같은 사람은 없다하더라도 그냥 막대기로 된 부지깽이라도 하나 마련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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