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 부자(父子), 기초수급자의 300만원
장발장 부자(父子), 기초수급자의 300만원
  • 전주일보
  • 승인 2019.12.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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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인천에서 배가 고파서 마트에서 음식물을 훔치다가 잡힌 부자의 이야기가 MBC 전파를 타고 나간 이후 기적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아침도 먹지 못한 부자가 마트에서 훔친 물건은 우유 2팩과 사과 몇 개, 음료수 몇 개였다.

그들 부자의 집에는 홀어머니와 7살 난 아들이 먹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대 남성은 택시 운전을 하다가 병이 나서 6달째 일을 하지 못해 생계유지가 어려웠고 기초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지원으로 4식구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마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배가 고파서 잘못을 저질렀다며 용서를 비는 남성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마트 주인의 말에 그들을 훈방하기로 하고 식당에 데리고 가서 밥을 사 먹이면서 지금 세상에 밥을 굶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며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한 남성이 식당에 들어와 하얀 봉투 하나를 던지듯 두고 갔는데, 봉투에는 현금 20만 원이 들어있었다. 식당에서 부자의 사연을 들은 그는 은행에 들러 현금을 인출하여 그들 부자에게 주고 사라진 것이다.

그들 부자의 사연이 알려진 뒤 어떤 이는 마트에 찾아와 사과 한 박스를 구매해 두고 그들 부자에게 주라고 한 것을 비롯하여 식료품을 무더기로 구매해 두고 그들 부자가 가져다 먹게 하라고 부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또 많은 사람이 마트 주인을 나무라는 글을 올리거나 마트를 찾아와 비정하게 경찰에 신고한 일을 나무라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그들을 돕겠다고 나서고 도움을 주려는 손짓이 이어진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경찰도 몸이 부실한 가장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마련해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무료급식 카드를 만들어주어 생계를 유지할 길을 열어주었다는 훈훈한 소식이다.

이번 뉴스를 보며 아직 세상에는 인정이 살아있음에 안도했다. 아니, 원래 우리 민족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남을 깔아뭉개고 앞으로 나서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난하고 늘 부족하게 살았지만, 언제나 이웃을 걱정하며 농사도 서로 품앗이로 지으며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생각했다.

함께하는 두레를 아는 민족, 이웃이 있어야 내가 살 수 있음을 일찍이 알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아름다운 심성과 전통이 무너진 건 사악한 군인들이 나라를 훔쳐 모든 것을 힘으로 행하고 강한 자에 붙어야 산다는 생활철학을 만들어 낸 데서 비롯했다. 남을 짓밟아서 딛고 올라서는 게 사회정의라고 가르친 군사독재의 사고방식이 너무 오랫동안 이 나라를 지배했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라는 국민교육헌장 아래서 어른이 무시되고 돈 가진 자가 어른으로 떠받들어지는 사회 풍조가 만연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역조(逆潮) 현상이 일반화되었던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국민을 다스린다.’는 생각으로 군림하려는 자들은 국민을 아랫것으로 안다.

아파트 한 라인에서 아침저녁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어렵다. 군사독재 아래서 누군지 모르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곧바로 신고하여 멸문지화를 당하던 사람들의 생존 본능이 이런 사회를 만들었다. 모두가 비밀요원인 듯 경계해야 살아남던 시절의 더러운 생존 철학이다.

요즘 지역에서 서로 이웃을 돕는 움직임이 일고 세대 간 나눔과 지역 간 나눔이 확산하는 좋은 징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원래 우리가 가졌던 이웃의 개념이 다시 살아나려는 조짐이다. 이제는 신고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독재시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이 모여서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통령 하야를 외쳐도 잡혀가지 않는 자유로운 세상이다.

얼마 전에 울산에 사는 한 70대 기초수급자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써달라고 300만원을 동사무소에 내놓고 간 일이 있었다. 그의 말은 지금까지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살아오면서 푼푼이 모은 돈을 쓸 곳을 생각하다가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돕는데 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돈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가난한 기초수급자에게 300만원은 큰돈이다. 아마 그는 그 돈을 모으면서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이고 아니라면 병들거나 갑자기 어려운 상황을 대비하여 모은 돈일 것이다. 어쩌면 그 돈은 부자들의 300억 원보다 더 큰돈이었을 것이고 모으는 동안 여러모로 쓰고 싶은 유혹을 참느라 애썼을 것이다.

살벌한 권력싸움에 편한 날이 없는 정치꾼들은 장발장 부자의 이야기나 기초수급 노인의 이타행(利他行)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정말 안 된 생각이지만, 그들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려는 사람들은 그런 뉴스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장발장 부자를 선거에 써먹을 수 있을까하고 궁리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미 접촉하여 뭔가 이용할 방법을 모색했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오랫동안 권력에 빼앗겼던 인간존중과 신뢰를 회복해가는 조짐에 기쁜 마음이 들다가도, 아직도 그 시절 권력의 꼭두각시 시대를 그리워하는 인간들의 획책에 마음 여린 이들이 피싱을 당할까 걱정을 놓을 수 없다.

자칫 작은 불만 때문에 판을 송두리째 깨버리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는 것이다. 눈을 들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지난 시절의 악몽을 잊지 않아야 조금씩 돌아오는 사랑과 인간성 회복의 시대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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