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이 있는 자에게 분배하라”
“자격이 있는 자에게 분배하라”
  • 전주일보
  • 승인 2019.12.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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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닷새 후면 21대 총선을 향한 출발 총성이 울린다. 17일 예비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 물밑에서 정중동의 행보로 지지기반을 다져온 입지자들이 일제히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게 된다.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선거법 개정 논의가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지면 총선 시침은 한층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그 시침을 쫓는 후보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지고 있지만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은 언제나 착잡하다. ‘금배지에 겹쳐 떠오르는 금속신화의 상념이다. 수치로 따지면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은 5,100만 국민 중 300, 17만 명당 1명인 0,000006%의 엘리트다. 확률적으로 제로에 해당하는 그 수치는 명예를 대변한다. 권한도 막강하다. 입법권과 예산 심의 및 의결권 등을 쥐고 운명공동체 대한민국호의 항로(航路)를 결정한다.

우리 사회에서 점하는 좌표가 이러하니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존귀함에 걸 맞는 표징으로 금배지를 스스로의 손으로 달고 있다. 그렇지만 철인정치를 주창한 플라톤의 통치자들에게 금은 탐욕의 표상일 뿐이다.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할 천부적인 재능 그 자체가 금보다 존귀하니, 금 부스러기 따위는 오히려 명예를 해칠 뿐이다.

 

금배지를 보는 인식의 괴리

 

금배지를 보는 인식의 괴리 때문일까. 선거의 두 주체, 후보들과 유권자들의 온도 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확연하다. 명예와 권력을 움켜쥐고자 하는 후보들의 마음은 뜨겁게 달아오르건만 그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은 간단하게 넘길 현상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발명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에 대한 냉소는 가치전도에 해당한다. 그 무관심은 최선이 변질돼 최악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낳고 있다. 문제의식은 치열한 성찰을 요구한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즉각적으로 떠오른다. 물음은 누가 적임자인가라는 명제로 이어진다.

고대 그리스와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래 정치는 철학적 관심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통치 기술로써의 정치에 대한 견해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무수하지만, 본질로써의 정치엔 이의가 없다. 국가와 국민의 삶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고 그 상태를 지속시키는 합의된 제도가 정치다.

이 점에서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대로 정치적 동물에 해당한다. 인간은 완전할 땐 최고의 동물이지만 법과 정의에서 분리될 때는 가장 야만적이고 탐욕적인 최악의 존재다. 이 때문에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유대가 필요하다. 그 유대감의 고리가 바로 정의를 관장하고 질서를 형성하는 정치다.

 

‘2020체제이정표 세워야

 

정치의 본성이 이처럼 고귀하니 최선의 인물을 골라 국회를 구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21대 국회의 시대적 소명을 고려할 때 그 당위성은 더욱 부풀어 오른다.

무엇보다 촛불혁명의 완수가 첫 번째 소임으로 다가온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정권이 출범했지만 구시대의 찌꺼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 잔존하고 있다. 21대 총선을 통해 꺼져가는 촛불의 동력을 다시금 확보해 구시대 청산 작업을 완결해야 한다.

우리사회 재편은 더욱 본질적인 과업이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1987년 민주항쟁 승리로 쟁취한 헌법에 기초하고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구체적인 제도로써 선거법의 골자다. 제도의 구체적 실현을 위한 투표 행위는 지역주의로 관성화 돼 있다. 그 선거법과 투표행위의 속성이 결합돼 구축된 질서가 이른바 ‘87체제.

졸속과 야합의 측면이 없지 않지만 역사의 전개 과정을 긴 호흡으로 돌아볼 때 ‘87체제가 나름대로 당위성을 띠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87체제의 시효가 끝났다는 진단이 나온 지 오래다. 비합리적인 제도와 지역주의 관성이 우리 정치판의 부패와 정쟁을 온상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21대 국회는 ‘87체제를 극복해 한 단계 더 성숙한 ‘2020체제로 향하는 이정표를 놓을 소임을 안게 된다.

‘2020체제를 마중할 제도적 정비는 선거법 개정 논의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관건은 유권자의 몫인 중대선거(重大選擧)’의 실현 여부다. ‘중대선거는 유권자 재편성이 일어나고 정당에 대한 지지 기반에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정당을 지지하는 계층과 지역에 변화가 발생하는 선거를 일컫는다. 그런 투표 성향이 지속돼 새 정치지형의 주춧돌을 놓는 선거라는 의미에서 정초선거(定礎選擧)’와 일맥상통한다.

 

선거 당일에만 주인되는 지역주의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정치의식을 발현시켜 21대 총선을 중대선거로 기록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정쟁으로 지새우는 정치판을 향해 물갈이를 훨씬 넘는 판갈이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지역주의 투표성향이 여전히 공고하게 온존하고 있는 탓이다.

암울한 전망 속에 공직 선발을 위한 국민 행동 요령을 되뇌어 본다. ‘자격이 있는 자에게 분배하라.’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자 대원칙이다. 그 연장선에서 19세기 중후반을 살다간 미국의 신학자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James Freeman Clarke)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대원칙과 조언을 외면하는 국민들이 어떤 처지로 전락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선거하는 당일에만 주인이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250년 전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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