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움큼의 추억으로
한 움큼의 추억으로
  • 전주일보
  • 승인 2019.12.0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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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김 영 숙 /수필가
김 영 숙 /수필가

추억은 눈치 빠른 길동무다. 살면서 우리네 삶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녹초 된 영혼이 보인다 싶을 때마다 기억 속에 저장해둔 아련한 영상을 펼쳐 순간순간 미소 짓게 만든다. 길을 거닐다가 낯익은 풍경만 스쳐도,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서도 지난 기억을 떠올리고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귀에 익은 음악을 들어도 추억으로 남아 스치기도 하는 마음속의 앨범 같은 것이다. 보통 그 앨범은 아련함으로, 때로는 긴 한숨으로 때로는 잔잔한 그리움으로 펼쳐지면서 추억이란 이름으로 승화된다. 기억은 머리로 끌어내지만, 추억은 가슴으로 펼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를 오가며 우리는 어제를 추억하며 삶의 활력을 얻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다. 또한 동시대를 살거나 살아온 환경이 비슷하다면 그 추억 또한 비슷하다. 특히 학창시절의 일들은 가난 이라는 공통의 시대상황아래서 학교마다 닮은꼴의 사건이 벌어졌기에 유사한 추억꺼리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우리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마 비슷한 시대를 산 때문일 게다. 나는 유독 학창시절이 아릿하게 가슴을 흔든다.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오늘도 커피를 마시듯 습관처럼 추억의 실타래를 푼다.

중학교 2학년 때 기억이다. 아마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둔 날이었지? 우리는 학급 회의를 거쳐 삼백 원씩 갹출하여 선생님께 선물해 드리기로 했었다. 그 당시 3백 원이면 라면 여섯 봉을 살 수 있는 적지 않은 금액인지라 선 듯 내지 못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기에 총무는 일주일이 넘도록 먼저 걷은 학급비를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걷은 돈을 몽땅 분실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끼리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실장인 나와 총무는 일단, 담임 선생님께 사실을 고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일명학급비 분실 사건이라 칭하시고 문제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주셨다.

첫 번째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한 방식은 용지를 나누어주시며 학급비에 손댄 사람은 동그라미를 치고 나머지 사람은 가위표를 치고 접에서 내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무도 동그라미를 써낸 사람은 없는 듯했다. 두 번째 방법은 다들 눈을 감으라고 하시더니 학급비에 손 댄 사람은 조용히 손 들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역시 조용했다. 조금 얼굴이 붉어지신 선생님께서는 걸상을 들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무릎을 꿇으라 하셨다. 이삼십 분을 그렇게 벌을 서보지만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만 터져 나올 뿐 범인이 나오지 않자 급기야 운동장으로 나오라 하시더니 일명원산폭격을 시키셨다. 머리를 땅에 박고 엉덩이를 번쩍 쳐들고 등 뒤로 두 손 잡고 있는 자세인 원산폭격을 상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요즘 마냥 그런 벌을 세우는 선생님이 계신다면 인권침해로 지탄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때는 그런 벌이 다반사였다.

땡볕에서 이삼십 분을 그리 원산폭격을 서보지만, 범인은 없고 용의자만 65, 서로서로 의심하기보다는 급기야우리는 아니야라는 무언의 공동의식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반장인 나는 그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하다는 책임감을 느꼈고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그 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영수기가 쓰러졌어요.”

친구가 놀라서 소리쳤고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은 척 해버렸다. 선생님께서 당황해하시며 내 얼굴을 손으로 몇 번 두들겨 보셨다. 무척 아팠지만, 꾹 참았다. 그 때문에 친구들은 원산폭격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대신 나는 손수레에 짐짝처럼 실려서 병원까지 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놈이 까무잡잡하고, 통통해서 건강한 줄 알았더니 아주 약골이네요. 그만한 거로 쓰러지기까지 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먼 길 걸어서 학교 다니는 것이 저 딴에는 힘들었나 봅니다. 이참에 영양제라도 한대 맞혀야겠어요.”

선생님과 의사의 대화를 들으며 왜 그렇게 선생님께 죄송했던지. 한 시간 정도 영양제까지 다 맞고 잘 먹어야 기운 차린다 하시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냉면까지 사주셨다. 그렇게 학급비 분실사건은 범인은 색출도 못 한 채 일 단락 되고 말았다.

난 너희를 믿는다.”

하시며 선생님이 잃어버린 학급비를 보태주셔서 스승님의 은혜에 원 없이 감사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당신이 주신 돈으로 다시 선물을 해드린 셈이지만, 우리의 정성은 선생님의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풋풋한 그리움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추억은 인생이라는 길 위를 구르는 세월의 수레에 실려 다니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새싹처럼 무성하게 돋아나서 우리 기억의 화원을 차지하고 아름답게 채색된다. 가끔은 짓궂은 바람으로 말미암아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그로 인해 꽃도 피우고, 향기로 날려 허전한 감정의 뒤안길에서 훈훈함을 덧칠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사무쳐 인생의 맛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 그 시절의 기억은 늘 된장같이 구수한 고향 냄새가 난다.

꼭 한 번 돌아가 보고 싶은 그 시절, 철없는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가 들리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그 소리 가운데에 그 시절 친구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섞여 들렸는데. 빈 하늘엔 흰 구름만 두둥실 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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