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라는 세월 앞에서
30년이라는 세월 앞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19.10.1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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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이 용 만 /수필가
이 용 만 /수필가

김을 맨다.

밭에 난 풀이다.

큰 것은 손으로 뽑고 작은 것은 호미로 맨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 혼자서 김을 매던 밭이었다. 장가 간 뒤에는 어머니와 아내가 함께 김을 맸다.

그 밭에서 지금은 내가 혼자서 김을 매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되었고, 아내는 몸이 아파서 밭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전에는 두 사람 다 이 밭에서 오뉴월 뙤약볕에서도 하루 종일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팔팔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겨우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이 밭 골골이 난 이랑마다에 어머니와 아내의 땀방울이 얼마나 많이 배어 있을까. 거기에 비하면 내가 흘린 땀방울은 새발에 피다. 손을 부지런히 놀려본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미안하여 땀방울을 더 보태기 위해서다.

 

그 때가 언제였던가.

어머니 장년 때요, 아내가 청년 때이니 그렇게 오래 된 세월도 아니다. 30년쯤 된 것 같다. 그랬구나. 30년 전만해도 어머니도 아내도 힘이 세었을 때였구나. 그리고 나도 한창 때인 청년 때였었구나.

생각하니 눈물 난다. 30년 전의 세월이 하 그립다. 그 때는 몰랐었다. 언제까지나 그들이나 나나 한창 때일 줄만 알았다. 그 밭에서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30년이라는 세월이 그리도 긴 세월이었던가. 그 동안 어머니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고 큰 누님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환갑을 넘겼다. 30이라는 수가 그렇게 많은 수였던가. 그 수를 세는 데는 1분도 안 걸리는데…….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1년은 길었고 30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치 도적을 맞듯이 뭉떵 사라져버렸다.

세월이란 놈은 참 나쁜 놈이다.

제 갈길 저 혼자서 가면 되는 것을 많은 것들을 데리고 가버린다. 그냥 간 게 아니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 가버린다. 마치 태풍이 지나가듯이 휩쓸며 지나간다. 남아 있는 것들도 해코지 하듯이 형체를 바꾸어놓고 가버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버리고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꾸어 놓고 가버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30년 세월…….

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불렀던 노래다. 이산가족들에게는 30년이라는 세월이 나보다 훨씬 많은 사연과 큰 상처들을 남겨 놓고 갔으리라. 그들에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고 더 큰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고 원통함이 있으리라. 그들에 비하면 나는 또 한 번 새발에 피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이 밭도 바꾸어 놓았다. 그 때는 이 밭이 제법 큰 문전옥답이었다. 끼니꺼리가 마땅치 않아도 이 밭에만 오면 찬거리가 수두룩하였다.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도 이 밭에만 오면 반찬거리가 해결되었다. 가을이면 이 밭에서 거두어들이는 소출이 마당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초라한 밭이 되어버렸다. 밭 둘레에서부터 벋어 나온 가시덤불이 야금야금 먹어 들어와 밭을 왜소하게 만들어버렸다. 전에 어머니나 아내는 가시덤불이 밭으로 벋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괭이로 파고 호미로 긁어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이기지 못하여 작은 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도 이제는 그 때의 어머니나 아내의 힘을 따라가지 못하고 힘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나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지금의 나만큼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처럼 30년 전의 일을 회상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탄하면서 지나간 일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이 시점에서 3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앞으로 살아갈 10년 후나 20년 후에는 지금의 이 시절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할까?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아마 나도 10년 후에는 그런 말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시절도 소중한 시절이라는 말이 된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퇴직 후의 세월이 상당히 소중한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일이다. 내가 앞으로 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으며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할 일을 거의 마친 인생의 황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일에 대한 욕심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의 세월도 10년 후에나 5년 후에는 애타게 그리워하게 될 소중한 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달라진다. 아니, 그것이 5년 후나 1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은 어느 때 무슨 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오늘이 참 소중한 것이다.

 

오늘 문득 그동안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지금의 이 시절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소중한 시절을 아무렇게나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이 시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겠다.

30년이라는 세월 앞에서 오늘의 소중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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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임실지부장

T&P힐링에듀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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