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소나무 숲의 횟배앓이
왕소나무 숲의 횟배앓이
  • 전주일보
  • 승인 2019.06.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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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왕소나무 숲을 가로 지르는 신작로는
대전에서 군산비행장으로 가는 군용트럭 휘발유 냄새가 일주일에 너댓번
횟배앓이를 시키고 휭하니 지나가곤 했다
다송국민학교 3학년 어떤 여름 날
군용트럭이 땀을 찔찔 흘리며 소나무 그늘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팔뚝에 누리끼리한 털이 송골송골 나고
눈알이 파란 놈이
운전석에서 뛰어내리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시원스럽게 볼 일을 보는 것이었다
알전구 같은 머리들이 우르르 트럭 옆으로 몰려가서 ‘할로 짭짭’
오른손으로 밥 퍼먹는 시늉을 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놈이 유리창에 발모가지를 걸친 채
쪼코랫을 던져 주면서
허연 이를 내놓고 쉘라쉘라 지껄였다
덩달아 신이 난 나는 ‘시가랫토 기브 미 시가랫토 기브 미 랑께’
가위 모양의 손가락을 입에 대고
붕어 주둥이를 만들어 보였다
피우다만 담뱃갑을 던져주며 놈이 하는 말
‘이 시발 놈아,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쉐끼가 담배 피냐?’
우리들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다
일회용 커피를 핥으면서
‘형아, 쪼코랫또가 왜 이리 쓰다냐’
‘야, 인마. 그렁게 미국 놈 똥은 굵지’
돌아보니 트럭은 왕소나무 숲을 빠져나가 또 횟배앓이를 시킬 것 같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군산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왕 소나무 숲  :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 와야마을 앞 소재

어린 나는 가끔 배가 뒤틀리고 어지러웠다. 아버지는 뱃속에 벌레가 생긴 거라며 소다 한주먹 먹으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때를 맞추기나 한 것처럼 담임선생님이 변봉투를 나눠주며 똥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것도 내일 아침까지 안 가져 오는 놈은 가만 안두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새벽부터 변소깐에 쭈그리고 앉아 이마에 핏줄이 서도록 힘을 줬다. 나뭇가지로 똥을 손톱만 하게 뭉쳐 비닐봉지에 담았다. 교탁 앞에선 담임선생님은 대봉투 주둥이를 벌리고 변봉투를 들고 출석부 순으로 일렬로 나와 하나씩 담으라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코를 움켜잡고 자기의 변봉투를 대봉투에 밀어 넣었다. ‘짜아식들, 지 똥은 안 구리고 넘의 똥은 구리냐?’ 담임선생님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키득거렸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길가 밭에서 무 하나를 쑤욱 뽑아 씻지도 않고 우작우작 씹어 먹었다. 또 배가 뒤틀리고 어지러웠다. 담임선생님에게 받아먹은 산토닌도 효험이 없었다. 나는 똥독 오른 퉁퉁 부은 얼굴로 학교를 다녔다. 웬수같은 횟배앓이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지금도 가끔 꿈속에 횟배앓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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