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지배, 법의 내적 도덕성 충족이 선행되어야"
"법의 지배, 법의 내적 도덕성 충족이 선행되어야"
  • 김주형
  • 승인 2019.06.0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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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의 독후감 –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아담 쉐보르스키 외 지음)

2016년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기존 공무원 뇌물 범죄는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을 요구해 법의 공백이 크다는 이유였다. 정부는 공직의 돈이 오가지 않은 청탁과 대가와 직무관련이 없는 금품수수를 처벌하겠다고 했다.
 
공무원 외에도 그 직무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사립학교 교직원과 기자도  ‘공직자등’에 포함시켜 공직의 개념을 확대했다. ‘지키면 좋은 법, 다 지키면 좋지!’ 정도의 의미였다. 모두가 지켜야 되는 법이지만 모두가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은 법이 되고 말았다.

태산이 움직였지만 쥐 한 마리 뛰쳐나왔을 뿐이다. ‘김영란법’은 창대한 시작과는 달리 지금, ‘김영란법’ 시행이 논란이 됐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 그 법을 얘기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최저임금은 올라야 한다며, 최저임금을 올렸다. 하지만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비율은 늘어났다.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며 처벌을 유예했다. 정부는 안전해야 한다며 전좌석 안전벨트 의무화했지만, 영업용 차량, 유아용 카시트 등, 실제 적용 가능한지 모두가 의문이었다. 실효성 없는 제도로 ‘법 제도의 희화화’란 오명을 얻었다.

우리의 많은 법은 음식점 외부에 현란하게 장식해 놓은 모조 음식과 같다. 보기엔 좋지만 먹지 못한다. 실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법으로 어느 순간 위법자로 낙인을 찍고, 처벌을 받는다. 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되면, 그 위반자는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을 하기보다 재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

법치주의를 뜻하는 법의 지배와 기본권을 전제로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 그 사이를 고민하는 정치학 서적인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의 한국어판 서문은 최장집 교수가 적었다.

그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과 미국의 노동법을 비교한다. 1930년대 미국에서 노동조합의 결성을 방해하는 고용주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불법화하는 와그너 법의 입법은 미국 노조와 그 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1953년 미국의 와그너 법을 담은 우리의 노동관계법은 한국의 노동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법의 특징으로 “한국의 법체계 또는 법질서에서 조문으로 입법화된 법의 내용과 현실에서 시행되는 법 사이에 존재하는 광범한 괴리만큼 특징적인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급진적인 노동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는 전태일 열사는 사실 노동자 사회 건설 등의 거창한 구호가 아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을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근로기준법은 노사 관계를 규율하거나 실제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향해야 할 ‘규범적 의미’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이 지점에서 한국사회의 독특한 특징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다수가 범법자가 되든가, 그 법을 좀 더 낮은 수준으로 수정”하거나, 이러한 한국의 법질서 성격으로 “한국의 집권 엘리트와 법률 공직자들에게 엄청난 자의성을 부여”하였고, “한국의 법질서에서 법 적용 및 평결의 광범한 자의성은 위에서 말한 법의 내적 도덕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지키지 못할 수많은 규제와 처벌 조항을 만들고, 평소에는 어차피 모두 지키지 못할 것으로 수사, 조사, 처벌도 하지 않지만, 시끄러운 여론이 조성되거나, 맘에 안 들거나, 싫은 놈일 경우 여의봉처럼 길이를 달리하며 그 법으로 엄벌에 처한다. 이제 법을 어긴 사람은 나쁜 놈이 아니라 재수 없는 놈이 된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사실 이 책은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에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법을 지키게 할 것인가, 법의 지배를 위해 권력기관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이룰 것인가, 권력자에게 어떻게 엄정하게 법을 적용할 것인가, 선출되지 않는 사법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 균형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등을 고민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법의 지배가 한국에 건너와 어차피 모두가 지키지 못할 법과 국가 권력의 자의적 법 집행이란 문제가 됐다. 법의 지배에 대한 외국의 논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책의 이해는 한국 학자의 서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서구의 ‘법의 지배’를 논의하기에는 우리가 가진 법치의 모순이 너무 깊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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