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무렵에 만난 사람들
추석 무렵에 만난 사람들
  • 진남근
  • 승인 2008.09.19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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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가 좀 빨랐고 연휴마저도 짧았다고들 말한 추석이 옹골진 추억만 남기고 훌쩍 지나갔다. 멀고도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고향이지만 추석을 전후해 대다수가 다녀갔으리라 생각된다.

고속도로와 국도도 예년처럼 막히지 않고 원활한 소통이 이뤄졌다고 매스컴에서는 톱뉴스로 전해 온다. 고향을 다녀간 나의 친척들도 별 고생 없이 귀가했다는 도착성명서 같은 전화도 걸려온 것으로 봐서 다른 것은 못 믿어도 그 뉴스만은 확실한 것 같다.

사실상 시골 추석은 1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벌초를 가족단위로 왔다가 성묘까지 아예 마치고 돌아간 후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젠 조기성묘가 신세대 문화처럼 정착돼가고 있다. 어쩌면 오늘의 이기주의적 만능세태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는 증거도 되지만 도시민들의 약삭빠른 상술이나 다름없다고 나름대로 해석도 해본다.

그래도 추석을 앞둔 1주일만큼은 내가 살고 있는 시골장터와 시가지는 살맛이 물씬 풍겨났다. 평상시에도 주차난이 어려운 시가지가 온통 자동차에 사람물결로 출렁거렸으니 그런대로 좋았고 매일같이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 지속된 시가지가 고향을 찾아온 귀성객들의 발길로 거리를 밝게 해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래시장도 활기를 찾아 새까맣게 타들어간 상인들의 마음과 얼굴에서도 모처럼 해맑은 미소를 읽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 라고 했을까.

하지만 매년 이만 때면 어김없이 나타난 친구며 선후배들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음을 눈으로 느끼고 있으니 무얼 의미하는 걸까. 60대 초반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필자만의 고독인지 몰라도 몇 년 전만해도 추석 며칠 전부터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였는데 요즘은 뜸하다.

확실히 조용해 졌다.
내 인생의 유통기한에 결정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친구들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증거다. 그러기에 고향을 찾아 올 친구도 줄고 경제사정도 예년만 못한 모양이다. 오히려 요즘은 선후배들과 아들딸 그리고 사위 손자 손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줘서 마냥 행복하다.

술도 힘으로 마시는 것 같았다. 젊었을 때는 잔은 채워야 하고 임은 품어야 제 맛이 난다며 그렇게 마셔댔던 술도 이제는 7~8부 정도의 소량으로 따라야 술잔에 손이가고 잔 수도 세어가면서 마신다. 아니다 오늘만 알고 살았던 시절도 이제는 까맣게 잊고 내일까지를 계산하며 마셔진다.

그렇듯 1년이면 설날과 추석날 등 두세 번 정도는 어김없이 찾아온 친구가 서서히 없어지고 있으니 세월의 누수를 다시금 실감케 해준다. 다시 말해서 좀 덜 친한 친구나 동창생들이 안보이면 세상을 떠났다고 늦게 알려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의복에서부터 명절을 퇴색케 하고 있다. 먹을 만큼 살만한 집안의 꼬맹이들 말고는 한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충 간편복으로 조상의 묘를 찾아 경건함을 엿볼 수 없고 다만 제멋에 사는 아나운서와 개그맨들을 통해 TV 화면에서나 아름다운 한복을 볼 수가 있었다.

언제 만나도 반가운 고향 선후배들을 이제는 명절 말고 인터넷에서나 마음대로 만나보는 세상이 돌아 왔다.

웬만한 모임이나 고향소식은 인터넷 카페에서 하루면 수십 번을 들락거리며 농담도 주고받고 해외여행이며 가족 또는 연인 사진도 구경 할 수 있으니 차라리 경비도 절약되고 보고 싶을 때 맘대로 볼 수 있는 현세대가 젊은이들이나 기성세대들에겐 또 다른 천국인지도 모른다.

추석이면 어김없이 만났던 친구와 선후배들이 자꾸만 더 보고 싶어진다.
이 태 현/수필가 임실군재향군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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