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선심성 정책 보다는 사회모순 해소'로 나가야
포퓰리즘 '선심성 정책 보다는 사회모순 해소'로 나가야
  • 전주일보
  • 승인 2019.03.0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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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의 독후감 / 포퓰리즘의 세계화 (존 주디스 지음)
▲ 최영호 변호사(법무법인 모악)

포퓰리즘이 무슨 뜻일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기사 검색을 했다.

 2월 21일 서울시는 청년 1600명에게 50만원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고, 이에 대해 ‘포퓰리즘이나 선심성 정책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월 27일 일산에서 진행된 전당대회에서 후보자들이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촉구하자, 이에 대해 어느 언론은 “한국당 ‘당권 레이스’ 마지막까지 ‘극우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으나, 좋지 않은 의미의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일반적으로 포퓰리즘을 두고 대중주의 또는 인기 영합주의라고 해석했다. 사전적 의미는 ‘정치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형태. 대중을 동원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체제로 대중주의라고도 하며 엘리트주의와 상대되는 개념’이라고 했다.

의문이 들었다. 엘리트가 아닌 대중에 의한 정치인데 나쁜 건가? 대중은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의미지만, 많은 사람이 원하는 거라면 좋은 게 아닌가? 권력은 선거를 통해 가장 많은 득표자를 선출되는데, 선거권자가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덕목이자 결과가 아닐까?

미국의 티 파티, 월스트리트 점, 버니 샌더스와 트럼프. 유럽의 영국 독립당, 프랑스 국민전선, 덴마크 국민당, 오스트리아 자유당, 스위스 국민당, 노르웨이 진보당,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미국의 저술가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의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적 포퓰리즘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그 자체가 실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각 국가의 포퓰리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일련의 특징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포퓰리즘은 기존의 기존 정당이 가지고 있던 이념의 틀 속에서 우파, 좌파, 중도라는 용어로는 정의될 수 없으며, ‘이념이 아니라 정치 논리, 즉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포퓰리즘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일까? 자유 무역, 경제적 자유, 낮아진 국경의 벽, 보편적 인권의 존중이 맞물린 신자유주의가 확산되었다. 자유 무역과 생산 기지의 이동으로 기존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10달러를 받는 미국인이 1달러를 받는 멕시코 노동자와 경쟁할 수 없었다.

노동의 이동은 기존 일자리 문제와 더불어 선진국의 복지 체계를 흔들었다.  높은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복지국가는 자국 시민들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됐는데, 이민자들이 복지 체계에 무임승차할 것을 우려했다.

자유 무역의 세계화와 강력해진 유럽연합은 국가라는 개념을 희미하게 만들었고, 각 나라가 가진 주권을 약화시켰다. 엘리트들은 자유와 기본권을 읍조리며 변화된 세상을 찬양했지만, 몰락한 제조업, 심화된 경쟁으로 보호받지 못한 소외 계층을 양산했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영국 독립당의 인기 원인을 두고, ‘현대의 사회경제적 자유주의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버림받은 밑바닥 층이 탄생’, ‘최하층은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번영으로 인한 수익을 나눌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들은 가정의 안정성은 물론, 사는 곳과 국가의 정체성도 무너진 오늘날의 원자화된 사회에서, 막연한 상실감을 느끼는 아주 큰 집단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공적 문화적 생활을 지배하는 대도시 자유주의자들에게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비웃음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영국독립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주요 구성원’이라고 표현했다.

즉 포퓰리즘은 고상한 자유주의로 심화된 경쟁에 몰린 보호받지 못한 서민들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포장된 엘리트에 대항해 기존 정치 체제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지금 우리는.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의 일자리와 그 외의 일자리 사이의 거대한 차별의 강이 흐르고 있다. 그 마저도 부족한 일자리로 청년 실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출산율은 0점대로 접어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노령화로 근로 세대의 조세 부담이 늘어날 것이고, 부족한 노동력은 이민으로 대체할 것이다. 현재 갈등도 만만치 않지만, 지금의 갈등은 갈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래에는 세대, 계층간 갈등이 심각할 것이다.

우리가 가진 모순으로 인해 아마 우리는 서구의 것보다 더욱 심한 정치적 격변, 즉, 포퓰리즘을 겪을 것이다. 그 포퓰리즘이 우리의 모순을 확대하기보다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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