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의 첫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정치개혁의 첫발, 연동형 비례대표제
  • 신영배
  • 승인 2018.11.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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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 영 배/발행인

벌써 11월 하순이다. 계절에 따라 날씨가 변하듯 세상은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이 나라의 입법기관이라는 국회다. 조금 더 넓게 보면 정치권이다. 아직도 우리 정치권은 패거리 정치, 두목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패거리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국민쯤은 우습게 보는 정치,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하는 짓은 오로지 ‘내 실속 차리기’ 뿐인 정치판이다.

지난 16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각 정당 대표 부부를 초청해 저녁식사를 같이하는 자리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정치개혁의 첫 번째 과제인 ‘연동형비례대표’ 제도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놓아 정동영 평화당 대표 등과 설전과 가벼운 실랑이까지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었다. 또 민주당의 당론이다. 이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각 정당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당 대표가 자신들의 속내를 슬그머니 비친 대목이 퍽 불손하게 느껴진다.

소선거구제도는 ‘1등 독식’의 원시적 제도다. 가장 먼저 달려간 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방식,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한 불합리를 조금 개선한 것이 현행 비례대표제도다.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와 정당을 따로 투표해 정당별 득표 비율에 따라 의원정수에서 지역구 당선자 수를 뺀 나머지 숫자를 배분한다.

얼핏보면 그럴싸한 보완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제도로는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난 선거에서 정의당은 정당지지 투표에서 7.2%를 얻었다. 국회 300석의 의석을 비율로 계산하면 22석을 차지해야 하지만, 단 5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민주당은 25.5%의 정당 지지를 받고도 123석(41%)을 차지해 제1당이 되었다. 당시 국민의당은 26.7%(80석)의 지지를 얻고도 39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정당 지지도와 국회의원 의석수가 비례하지 않는 현행 선거법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런 편중 현상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있는 정당에는 사람이 넘치고 군소정당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지역에서 지지도가 높은 인물들은 일단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거대 정당에 가입하게 되므로 군소정당은 인물난에 봉착한다. 정당의 이념이 좋고 미래를 지향하는 성향이 마음에 들어도 군소정당 후보로는 선거에서 당선할 수 없으므로 싫건 좋건 거대 정당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가 시행되면 이런 인물난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정당 지지도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고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된 숫자를 뺀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충당하게 되면 거대 정당보다 오히려 향후 국민의 지지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정당에 가입하려는 신인들이 많아질 것이다.

좋은 정치 신인들이 많아지면 정치문화도 자연히 발전한다. 그동안 마구잡이 정치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이 정치를 외면하면서 권모술수에만 밝은 인물들이 정치판을 뒤흔들었기에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다.

거대 정당에는 해묵은 계파가 존재하고 계파의 우두머리는 막강한 힘을 과시한다. 거기서 계파의 뜻을 따르면서 정치 신인은 나쁜 관행과 패거리 정치를 배우게 되고 저절로 때가 묻어 정치입문 시절의 기개나 정의감 따위는 흘러간 노래로 변한다.

그동안 한국당에서 상식 이하의 정치행태로 지탄을 받던 상당수 정치인들의 과거를 보면 학생운동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인물이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인물들이 변하는 이유는 바로 ‘보스정치’, ‘패거리 정치’ 때문이다.

어제 한국당에서 쫓겨난 전원책 변호사가 CBS김현정 뉴스쇼에 출연해 “두목정치가 사라지지 않고는 정치발전, 정치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정치는 하루빨리 계파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밉보이면 공천을 받을 수 없으니 두목의 말에 순종하고 시키는 대로, 때로는 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과잉 충성이라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정치 신인들이 호기 있게 입문해서 조금 지나면 ‘행동대원’을 거쳐 ‘행동대장’으로, ‘중간보스’로의 위치를 확보하며 ‘패거리 두목’이 되는 우리 정치다.

조폭의 생리를 닮은 정치판이 바뀌려면 우선 선거제도가 바뀌어 ‘승자독식’ ‘두목 정치’의 정치생태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물론 정당공천이라는 제도가 있는 한 두목정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기 어렵겠지만, 최근의 정당공천은 지역 여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기득권 거대 정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무슨 수로 법을 개정하여 제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국민이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국가 권력의 실질적 주인인 국민의 힘이 있다.

박근혜 정권과 이명박 정권이 지금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오로지 ‘촛불의 힘’이었다. 정치권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내 몫 챙기기에 매진한다면, 이번에도 국민이 나설 것이다. 지금의 국민은 지난날의 국민과 다르다.

사람은 같을지 몰라도 소프트웨어인 생각이 다르다. 지난날처럼 웬만하면 참고 보아줄 국민이 아니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주인들이 다시 일어나 정치를 바꿀 것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제발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비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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