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 '궁예도성'의 비원
1100년 '궁예도성'의 비원
  • 전주일보
  • 승인 2018.05.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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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방 건설은 궁예의 비원이었다. 신라 왕실로부터 버려진 비운의 왕자로 전전하다 후고구려를 세운 역사의 풍운아 궁예. 비록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하고 관심법과 가혹한 형벌 등의 기행으로 폭군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는 고구려 뿐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까지 아우르는 '대동방' 건설을 꿈꿨던 역사 속 몇 안되는 이상(理想) 군주 중 한사람이었다.

그의 비원이 담긴 곳이 '궁예도성'이다.

898년 철원에서 지금의 개성인 송악으로 도읍을 옮긴 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칭하고 이듬해인 905년 철원으로 재천도한다. '마진'은 '마하진단(摩訶震旦)'의 줄임말이다.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음역한 말로 불교에서 쓰는 단어들이다. 마하는 '크다' 진단은 '동방'을 뜻하는 말로, 합치면 '대동방'이란 의미가 된다. 대동방국 건설. 바로 궁예의 이상이자 철원 재천도의 꿈이었다.

철원 재천도와 함께 지어졌던 성이 궁예도성이다. 궁예의 비원은 도성의 규모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도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된 '이중구조'였는데 외성 둘레가 12.7㎞ 내성 둘레는 7.7㎞에 달했다. 면적도 9천500만㎡에 이르렀다. 최대 약 20만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한성백제의 풍납토성 3.5㎞, 신라의 경주 월성 1.8㎞, 고구려의 국내성 2.7㎞와 비교하면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궁예는 911년 다시 국호를 마진에서 태봉(泰封)으로 바꾼다. 주역에서 '태(泰)'는 '천지가 어울려 만물을 낳고 상하가 어울려 그 뜻이 같아진다', '봉(封)'은 '봉토'를 뜻한다.

마진에서 태봉으로 이어지는 국호 속에 궁예는 그의 대동방 건설의 염원을 그대로 담았다. 궁예도성은 918년 왕건에 의해 폐위될 때까지 궁예와 운명을 같이했다.

오늘날 궁예도성은 남북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궁예도성터가 있는 곳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풍천원 일대로, 비무장지대(DMZ)다. 안타깝게도 궁예도성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정확히 반분돼 남북으로 갈렸고 경원선 철도에 의해 동서로 나뉘었다. 갈라져 있는 모양이 한반도 현실을 그대로 빼닮았다.

그리고 2018년 5월. 궁예도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으로부터 촉발된 한반도 평화의 물꼬가 사람들의 시선을 비무장지대로 끌어모으면서다. 그 중심에 궁예도성이 있다.그동안 궁예도성에 대한 남북공동발굴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동질성 회복차원에서였다. 하지만 이 논의는 번번히 분단현실을 넘지 못했다.

때마침 한반도 평화의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 섣부르지만 통일에 대한 기대도 부푼다. 궁예도성 공동발굴이 머지않아 보이는 이유다. 고구려 부활을 기치로 위대한 대동방의 이상을 꿈꿨던 1100년 궁예도성의 비원이 용트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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