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두각시를 내 품에
교두각시를 내 품에
  • 전주일보
  • 승인 2018.05.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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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금종 / 수필가

5월의 하늘은 참으로 맑고 푸르던 날 집을 나섰다. 사방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바람 따라 꽃길 따라 쉬엄쉬엄 달리다 보니 당도한 곳은 마이산의 북부 주차장이다.

가위 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진안에 가위박물관이라? 안내서에는 용담댐 수몰지역에서 고려를 대표하는 가위가 출토된 바 있어 가위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마이산의 형상이 가위의 벌린 모습과 유사하다 해서 이곳에 가위 박물관을 설립하게 되었다는 부연 설명도 있다.

마이산이 말의 귀를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마이산이 가위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은 약간 수긍하기 힘든 면도 있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조그만 인연이나 유사성을 걷어 올려 의미화해서 향토의 명예를 높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한다.

가위는 옷감이나 종이를 자르거나 머리카락을 자를 때 이용하기도 하고 나무토막이나 함석 또는 철판까지도 자를 때 쓰이는 기구가 아니던가? 그러하니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전해 내려온 생활필수품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의 <규중칠우쟁론기>에도 가위는 교두각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척부인아, 그대 아모리 마련을 잘한들 버혀 내지 아니하면 모양 제대로 되겠느냐. 내 공과 내 덕이니 네 공만 자랑 마라"라며 규방의 부인들이 바느질할 때 쓰이는 기구로서는 자기가 천하제일의 공헌자라고 호언장담하는 것을 보면 가위야말로 여인들의 손에서 떠나서는 아니 되는 생필품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가위로서는 BC 1000년경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철제가위를 꼽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분황사 석탑에서 나온 원시 형 가위를 최초의 가위라 한다. 고대의 녹슨 가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1,500여점이나 되는 희귀 가위를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려니 싶다.

 갖가지 형태의 가위를 둘러보면서 인간과 닮은 점이 많은 것이 가위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두 획이 서로 맞대고 의지하는 모습이 사람(人)을 나타내듯, 교합 나사를 의지해서 서로 엇갈려 있는 모습이 사람을 꽤 닮았다. 가위가 한 개의 날로써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듯 인간 또한 혼자서 일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남녀 둘이서 결합할 때 완전한 가정을 이루듯이 가위의 두 날이 교합(交哈)할 때 목적한 바를 이룬다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조금은 지나친 비약일까? 손바닥도 맞부딪혀야 소리가 나고 젓가락도 두 짝이 있어야 그 본래의 소임을 다 하는 이치와 같으리라.

가위는 자르고 다듬는 기구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자르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예쁘게 자르는 데 있다. 사람도 머리카락을 자르고 마지막 다듬는 과정에 가위가 등장하고 굽어진 선이나 톱니바퀴처럼 굴곡이 심한 곳도 가위가 아니면 어려움이 많다. 나무의 수형을 바르게 하고, 열매 맺음을 좋게 하는 전지도 전정가위가 있기에 가능하다.

아름다운 옷을 만들기 위해 옷감을 척척 자를 수 있는 것도 가위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위가 지나가고 나면 거칠던 것도 정갈하게 되고 하찮은 것도 쓸모있는 물건으로 변신한다. 가위로 자르고 다듬는 다면 이 세상 만물치고 예쁘고 아름답지 않은 물건이 어디 있겠는가?

자연의 일부인 인간 역시 부드러운 손길로 용기를 주고 격려하며 어깨를 두드려 줄 때 바른길로 나아감은 가위로 나무를 손질하는 근본 이치와 무엇이 다르리. 만약 한 순간 바르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거나 비웃기라도 하면 더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됨은 잘못 가위질하여 망친 작품과 무엇이 다르랴?

가위 하나를 바라보니 지난날의 아련한 모습이 다가온다. 흰 눈이 사락사락 내리는 밤, 연분홍빛 열아홉 누님은 가위 질을 했다. 가위 끝에서 색색의 비단 천들이 낙엽처럼 떨어진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그 천들을 모아 조각조각 수를 놓으면 꽃이 피고 나비가 찾아오고 새들이 날았다.

육각 보자기는 아버지의 때늦은 저녁 밥상을 덮는 상보床布가 되고, 열두 폭 옥양목 하대포下帶布는 아래 벽에 걸리는 비단옷을 감싸는 가림막이 되었다. 아침나절 노송 위에 앉은 홍학 한 쌍이 얼굴을 비비며 사랑을 확인한다. 그 무늬가 누님이 그리던 미래이었으려니 싶다. 이젠 그 시절은 가고 누님의 솜씨도 녹슨 가위 날처럼 무뎌졌겠지만 아련한 추억만은 수채화처럼 남아있다.

나는 가끔 내 마음을 재단 할 수 있는 가위 하나를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옛 여인들의 은장도처럼 나를 제도 할 수 있는 수호신으로써 가위 말이다. 거친 금속으로 무디게 만든 것이 아니라 숙련된 장인이 잘 다듬어서 만든 앙증맞고 날렵한 가위이다.

그것으로 내 마음 밭에 헛된 욕심이 잡초처럼 자라면 한 움큼씩 자르고, 남을 비난하고 시기하는 사악함이 넝쿨처럼 뻗어오면 가지를 치고 다듬으련다. 전지한 나무가 바르게 자라 많은 과일을 열리게 하듯 시나브로 황폐해지는 마음 숲에 잡목들을 걷어내어 새 우듬지가 하늘높이 자라게 하리라.

백금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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