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기준
중산층의 기준
  • 전주일보
  • 승인 2018.04.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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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이다. 고등학교 친구 모친상을 갔다. 다소 늦은 시간대에 장례식장을 갔던 지라 내심 조바심이 일었다. 단체 조문하기로 했던 친구들이 남아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마음이었다. 뜻밖에 친구들은 여 남은 명 정도 남아 있었다. 간만에 보는 친구도 있어 반갑게 자리에 끼어들었다. 반가운 마음과는 달리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뒤늦게 합류해 분위기 파악이 안됐다는 것은 핑계거리고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내용이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대화는 주로 부동산과 담보대출에 대한 것이었다. 말이 부동산 대책이지 서울 아파트 가격이 주된 화제였다. 잠실 아파트가 얼마나 올랐다느니, 여의도 모 아파트 가격은 몇 억이 뛰었다느니 등등.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아파트 시세 이야기가 시작된 듯 보였다. 친구들의 집값 대화는 밤 12시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항공사와 증권사 지점장, 제약회사 연구실장, 변호사, 의사 등등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 생활 20년 이상을 하면서 나름 닳고 달아질 나이가 됐다. 이들에게서 학창시절 논하던 민주화, 사회정의 등의 거대 담론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주제없이, 형식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게 친구들이 아니던가. 결혼생활, 자식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을 나누고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동심을 찾을 수도 있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새로운 정부와 변화된 사회상에 대한 논의를 기대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2시간 넘게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서울 집값 이야기에만 몰두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씁쓸한 마음이 앞섰다. 민주화에 대한 열정과 울분을 토해냈던 친구들이 배금주의에 찌든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상황이 낯설었다. 집에 가는 길에 퐁피두 대통령이 제시했다는 프랑스 중산층 기준이 떠올랐다. 프랑스 중산층 기준은 제1외국어 하기, 직접 즐기는 스포츠 만들기, 악기를 다룰 줄 알기, 직접 요리하기, 공분에 참여하기,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활동 등이다. 

직장인 대상 설문 조사 결과로 보는 우리나라 중산층 기준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부채없는 아파트 30평이상 보유, 월급 500만원 이상, 자동차는 2천cc급 이상 중형차 보유, 예금 잔고 1억원 이상 보유 등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대를 얻고 있다. 

얼마전 타계한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유족들이 보여준 선행이 오버랩된다. 유족들은 장례식장에 노숙인 50명을 초청해 따뜻한 식사를 대접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호킹박사 유족들의 행동에서 오는 진한 감동의 물결을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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