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봄 바람
꽃들의 봄 바람
  • 전주일보
  • 승인 2018.04.0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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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바람났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잔뜩 웅크린 채 두껍게 감싸고 있던 꽃망울을 기어이 터뜨리면서다. 청춘의 봄 바람은 조신함을 지켜내기 어려운 유혹이었을게다. 아랫마을 매화가 바람이 나는가 했더니, 웃 마을 산수유가 해사한 민낯을 내보인지 오래다.

시인(권나현)은 꽃들의 봄 바람을 익살스럽게 묘사했다. 어디 매화와 산수유 뿐이겄소. 키만 빼뚜름하게 껑충 큰 목련부터 대그빡에 피도 안 마른 제비꽃까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네. 궁딩이 거들먹거리며 이 산 저 들녘에서 쭈뼛거리다가 봄 맞이, 답청((踏靑)가겠다며 빠알갛게 주둥이 칠하고 나선 진달래는 또 어떤가. 동네 화장품 가게 값싼 루즈가 동이 나 부렀다지. 아마도. 이를 어째야 쓰까이~

아버지의 정략 결혼에 반대하고 뛰쳐 나간 구노가 결국은 아버지 화풀이의 희생양이 돼 피어났다는 복수초. 갯버들, 너도(꿩의)바람꽃, 세잎양지꽃, 깽깽이풀, 얼레지, 큰괭이밥, 금괭이눈, 큰개불알꽃, 처녀치마, 애기중의무룩,광대나물, 동강할미꽃, 여러 이름을 가진 현호색, 자주괴물주머니, 앉은 부채, 노루귀 등등.

이름만으로 정겨운 마음이 절로 이는 우리네 들꽃들, 너나 할 것 없이 야무지게 바람났다. 


이 땅의 수많은 가객(歌客)들은 매년 이맘때면 저마다의 사연담은 가사에 음률과 곡조를 붙여 봄을 노래하곤 했다. 그 가운데서 '봄날은 간다'는 고 백설희의 선창 (先唱) 이래 쟁쟁한 후배들이 리메이크업해 부르면서 가는 세월에도 아랑곳 않는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그 노래의 가사는 계간 '시인 세계'가 2004년 당대 시인 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우리 대중가요에서 가장 좋은 노랫말로 뽑혔다.

노랫말을 지은이는 물에 떠 흘러가던 새파란 풀잎을 보고 꽃편지를 내 던졌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 새가 울면 따라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의 하루 해가 길었으리라.

시인의 표현처럼 참말로 수상한 계절이다. 여그 저그 온 천지가 앞 다퉈 연지 곤지 찍은 꽃 얼굴로 몸살나게 생겼다. 꽃들의 바람남은 붙들어 잡아 맨다고 주저 앉혀질 일이 아니다. 말린다고 들을 성질의 것도 계산 밖일 터. 계절의 선 순환이 자연의 섭리인 바에야 차라리 인정할 것,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입춘, 우수, 경칩을 지나고 밤낮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1주일여전 춘분에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렸지만 그래도 꽃들의 봄바람은 못 말릴 정도다. 눈 송이같은 하얀 꽃들을 분분하게 날리며 꽃대궐 화사하게 한바탕 봄 잔치 마당을 오픈했다. 어느 순간 속살을 드러내고만 꽃바람.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그 바람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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