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리의 사모곡(思母曲)
이총리의 사모곡(思母曲)
  • 전주일보
  • 승인 2018.03.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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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흔 세살의 노모를 여읜 이낙연 국무총리의 사모곡(思母曲)이 많은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어머니'라는 세 음절에 가슴 먹먹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평소 이 총리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전남도지사 시절, 어쩌다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주제에 오르면 한참을 이야기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리고 그 마지막은 살짝 촉촉해진 눈빛이었다. 그 음색이며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총리의 어머니 고 진소임 여사는 사실 대한민국의 특별한 어머니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그렇듯 이 땅의 평범한 어머니다. '어머니'가 모두에게는 보통명사지만, 저마다에게로 가서 고유명사가 되듯 이 총리가 '어머니'라고 젖은 목소리로 호명할 때 비로소 하늘 땅 사이 유일한 의미가 된다. 이 총리의 사모곡이 국민들에게 가슴 시린 울림을 준 것도 그의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사랑, 그리움이 보는이, 읽는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면서 스스로 애틋한 마음 한자락을 꺼내보게 한 때문이리라.

이 총리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전남지사에 당선된 뒤 어머니를 관사에 모시면서 했던 말이다. 이 총리는 "도지사에 당선된 것 보다 더 기쁜 것은 50년 만에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팔순 노모가 육순 아들이 외출할 때마다 "애야, 차 조심해라"라고 말하고, 육순 아들이 팔순 노모 앞에서도 재롱을 피운다던, 똑 그런 느낌이었다.

진 여사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이 총리를 야무지게 키웠다. 아버지를 대신해 농사일과 채소 장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가족들이 먹을 밑반찬을 마련하기 위해 왕복 수십㎞의 거리를 걸어 영광 백수해변까지 게를 잡으러 다녔다. 이런 어머니를 이 총리는 "이 넓은 영광 법성포를 다 헤집으며 나를 키웠다"고 회상했다. 많은 이들이 "아, 우리 어머니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지"하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했다.

이 총리는 어머니에 대해 "가장 어려운 국면에 처했을 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을 맡았지만, 2003년 민주당이 분당된 뒤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은 게 대표적 사례다. 수 차례 신당 참여 권유에도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길게 보라"며 만류하는 어머니의 뜻을 좇아 소신을 지켰다. 오늘의 이 총리를 만든 결정적 한마디였을 게다.

지난 2007년 이 총리 등 칠남매가 모여 어머니를 기억하며 펴낸 '어머니의 추억'이란 책이 있다. 팔순을 맞은 어머니에게 바친 책이다. '큰딸 연순이의 추억'부터 '막내아들 상진이의 추억'까지 다 담겨있다. 고인이 하늘에서 이 책을 품에 꼭 안고 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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