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행정이 시급하다
융합행정이 시급하다
  • 신영배
  • 승인 2017.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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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영배/대표이사

오늘도 새벽공기가 예사롭지 않다. 수일 전부터 내린 눈이 이면도로와 골목에는 아직 그대로다. 줄포의 겨울은 서해안 어느 지역보다도 눈이 많이 내린다.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도 겨울이 오면 어김이 없다. 전형적인 서해안 포구의 모습 그대로다.

오늘은 늘 다니는 산책길이건만,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서 그런지 상당히 미끄럽다. 할 수 없이 산책코스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변경했다. 줄포초등학교는 시가지보다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학교에 올라오니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분다.

캄캄한 새벽이어서 그런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얼핏 보니 운동장 한쪽에 커다란 건축물이 들어서있다. 순간 초등학교 운동장에 무슨 공사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해보니 상당한 규모의 건축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산책을 마친 후 교장실에 문의를 해보니 줄포를 비롯한 인근학교 선생님들이 거주할 관사를 짓는다고 했다. 원래는 줄포 인근 보안초등학교에 지으려고 했는데 줄포지역 주민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내는 바람에 줄포초등학교 운동장에 신축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왜 하필이면 초등학교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사용하는 운동장에 관사를 짓는 것인지 등의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사실 줄포초등학교 운동장은 그리 넓지 않다. 시골지역 운동장치고는 상당히 비좁다. 성인축구장은커녕, 어린아이들도 제대로 축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운동장이다. 그럼에도 운동장 한 쪽에 건물을 신축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줄포초등학교 본관 뒤편에는 수백여 평의 나대지가 있다. 또 기존에 지어진 관사도 있다. 필자 생각으로는 기존의 관사를 리모델링하거나 신규로 신축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면 뒤편의 부지에 관사를 지었어야 옳다.

특히 전북지역 초등학교의 경우 무주와 장수, 고창 등 전주지역과 거리가 먼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주시와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즉 출퇴근이 가능하다. 다만 줄포처럼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릴 경우 자동차를 운행 할 수 없는 상황 때, 교사들이 관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가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선후배를 비롯한 지인들과 함께한 우연한 술자리에서 줄포초등학교 관사 신축문제를 거론했다. 이 자리에서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됐다. 줄포지역 주민들이 교육청에 관사신축과 관련해 민원을 제기한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시작됐다는 것이었다.

줄포 인근지역의 교사들이 관사를 이용할 경우 줄포지역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생필품도 구입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였다. 그런 목적이라면 관사는 줄포 소재지에 신축을 해야 교사들도 편하고 지역경제에 도움도 될 것이다.

그러나 전주에서 출퇴근 할 수 없는 도서와 산간이 아닌 부안에서 교사들이 관사를 이용하는 일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의 없다. 어떤 문제에서 공동 관사를 구상했는지 모르지만, 짓고 있는 관사는 거의 비어있을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을 출범하면서 여야 갈릴 것 없이 국민을 위한 협치를 내세웠다. 기업들도 직원들에게 단순한 직무에서 벗어나 타 직무와의 연계를 위한 융합적 사고를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교육청이든, 행정이든, 공공구조물을 짓거나 예산을 세우고 집행을 할 때에는 주민의 편익을 먼저 생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국민주권시대의 공익정신이다.

정책의 집행도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관성을 유지하고 인근 자치단체와 협조와 융합을 구현할 때, 예산이 절약되고 중복을 피할 수 있다. 교육행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 협치와 융합행정에 대한 훈련을 해본 적이 없다. 되레 남이 잘되면 배가 아팠고 이웃 시군이 잘 나가는 사업을 금세 베껴다가 중복행정을 서슴지 않았다. 이론적으로 협치와 융합행정을 주장했을 뿐, 국회는 여야 상호간의 이해득실에 매달려 맨날 제자리걸음이고 융합은 구호로만 존재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사회와 기업문화도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당국이 지난시대의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국민은 답답하다. 국민의식은 저 앞에 있는데, 따라가는 정치권은 아직도 밤길을 더듬거리고 있다. 지금은 뭔가를 만들고 지어서 그런 것을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시대가 아니다.

줄포초등학교 관사 신축에서 엿 볼 수 있듯이 전북교육청이 지역주민들의 편익과 융합을 고려했다면 아이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이 아닌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시가지에 관사를 신축했을 것이다. 또한 관사의 공실을 메꾸기 위한 방안도 함께 강구했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위치는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공실이 예상되는 관사를 교사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관사 운영방안을 강구했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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