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존재감
공영방송의 존재감
  • 신영배
  • 승인 2017.10.11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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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 영 배 / 발행인

MBC와 KBS노조가 파업을 시작한지 벌써 39일이 지났다. 한국의 대표 방송이던 두 공영방송이 파업으로 정상적인 방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공영방송 파업으로 불편하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추석 연휴동안 오락프로그램은 몇 번 돌려보았고 프로야구 중계를 보았을 뿐, 뭐 따로 불편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뉴스는 파업이전부터 JTBC의 정직한 보도를 보거나 SNS와 인터넷 포털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었으므로 두 공영방송을 따로 챙겨보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두 거대 공영방송은 실제 국민에게 그다지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공룡화 된 조직으로 엄청난 예산을 쓰면서 그동안 두 공영방송이 한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의 사태를 몰고 온 근본 원인은 양 공영방송이 정권에 충성하느라 방송 본연의 책무 따위는 팽개치고 권력에 충성을 했기 때문이다. 정권을 비판하는 기자나 피디를 인사조치하거나 내쫓고 지시에 순응하는 자들을 자꾸만 윗자리로 승진시켜 간부로 양성하는 악순환을 거듭한 데서 참다못한 노조가 일어난 것이다.

지금 파업 중인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대로 정권의 비위에 맞도록 발라맞추는 방송을 하면서 언론의 기본을 수행하려는 기자와 PD들을 핍박해온 경영진이 물러가고 바른 세력이 공영방송을 제대로 이끌게 되면 국민이 행복할까? 시청료를 징수해 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매진해온 KBS의 생태가 달라질 수 있을까?

아마도 대다수 국민들은 필자처럼 오늘의 공영방송 파업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날 TV 앞에 동네사람들이 모여앉아서 연속극 ‘여로’를 보던 시기에는 두 공영방송의 보도는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었고 권위였다.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하고 유신헌법을 만들 수 있던 힘도 모두 TV에서 나왔다. 심지어 불법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벌름거리는 코를 백수의 왕인 사자의 코를 닮았다며 지도자감이라는 여론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금 국정원 댓글사건이 차츰 베일을 벗고 있듯이 그동안 정권은 양대 공영방송을 통해 정권의 허물을 덮고 없는 공을 만들어 과대 선전하는 방법으로 국민을 우롱했다. TV를 정권이 독점하던 그 시대에 산 노인들은 지금도 양대 공영방송에 눈을 맞추고 살기에 ‘박근혜 석방’ 이니 ‘전술핵 재배치 서명운동’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두 방송 노조가 39일째 파업을 하고 있어도 국민들이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파업을 하고 있는 노조원들의 뜻을 아는 국민들만 아는 일이 되어 오늘도 진행형이다. 어쩌면 많은 국민들은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 것인지 조차 알지 못하고, 차라리 없어져서 TV 시청료를 내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뉴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두 방송은 좋은 뉴스를 제공하지 못했고 숱한 왜곡으로 정신만 혼란해지는 일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오늘도 농성장에서 가슴 아픈 하루를 보내고 있는 노조원들이 승리해 정의가 바로서는 공영방송, 국민의 편에 선 방송을 구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경영진이 물러나서 지금 당장 국민의 뜻에 맞는 방송이 된다 해도, 혹시 새로운 정부가 방송에 개입하고 여론을 호도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길을 잘라내지 못하면 이번의 승리 또한 의미 없는 것이 된다.

어느 정치세력도 방송의 편성과 인사에 간섭할 수 없는 법체계가 마련되지 않고는 방송정상화란 이름뿐인 헛구호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방송법과 방송위원회법, 방송문화진흥법, 방송통신위원회법, 방송광고균형발전위원회법 등 방송관련법이 얽히고설키어 있는데, 결국 기본법인 방송법이 정부의 간섭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한 방송이란 애당초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이런 법이 개정되거나 공영방송 자체를 간섭하지 못하는 새 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번 양 방송 노조의 투쟁은 앞으로도 수 없이 거듭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 투쟁하는 노동조합과 정부, 방송위원회, 국회가 마음을 합해 진실로 나라의 어두움을 비춰줄 수 있는 공영방송을 만드는 기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경과를 잘 알고 있는 정부가 나서서 스스로 정권의 나팔수인 공영방송의 역할을 포기할 조치들을 한다면 아무도 이를 반대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지난겨울에 촛불민심이 크게 일어나던 시기에 JTBC라는 작은 종편채널이 세상을 바꾸는데 얼마나 큰 몫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그건 작은 종편 채널의 힘이 아니라 ‘손석희’라는 올곧은 방송인 한사람이 지켜낸 역사였다. 들여다본 일은 없지만, 사주(社主)라 할 수 있는 삼성과 중앙일보, 그리고 정부와 청와대, 국가정보원 등에서 가해진 압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가 무엇으로도 협박하거나 회유할 수 없도록 양심적인 방송인으로 살아왔기에 그 압력들을 이겨내고 이 나라에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두 거대 공영방송의 파행을 보며 오래지 않아 사태가 해결되고 본직으로 돌아간 노조원들 가운데서 수많은 ‘손석희 앵커’가 나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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