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 방통 노린재 트랩
신통 방통 노린재 트랩
  • 전주일보
  • 승인 2017.09.2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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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여 화 / 수필가

가문 날씨가 이어지다가 우리가 콩을 심은 그날 밤에 비가 내렸다. 비가 많이 쏟아져 흙이 다져지면 콩이 목 메여서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오랜 가뭄 끝에 비는 반가웠다. 그날 밤 비는 솔찬이 많이 내렸다. 콩이 목 메여 안 나면 어쩌나 하다가 그래도 먼지 날리던 밭두둑에 비가 내려서 흙이 젖으면 콩이 쉽게 불어서 싹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과연 삼일 째부터 불은 콩이 머리를 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쑥쑥 올라와서 가득해야 할 콩이 드문드문 보인다. 큰일 났구나 싶었다. 역시 목이 메여 안 나는 건가? 아니면 새들이 다 빼먹어서 안 나는 건가? 우리 부부는 퇴근 후 빈자리에 콩을 다시 심느라 사흘을 매달렸다. 콩 때우기는 쉽지 않았다. 비가 내려 땅이 다져져서 호미질하기도 힘이 들었다. 마지막 사흘째는 남편 혼자 때우기를 마쳤다. 처음에는 메주콩을 심었는데 보식은 쥐눈이콩으로 했다. 심은 콩은 당초 35㎏, 나중에 때운 쥐눈이콩이 12㎏다. 콩 값도 만만치 않았다.

때운 콩은 씨가 아주 잘 섰다. 먼저 심은 콩과 늦게 때운 콩의 차이는 단 며칠인데도 완연히 다르다. 먼저 심은 메주콩이 꼬투리가 달리고 나중에 심은 쥐눈이콩은 꽃이 피고 있다. 이때에 약을 쳐야 병충해를 막을 수 있다 해서 비싼 약을 샀다. 하필이면 그때 트럭이 고장 나서 옆집에서 경운기를 빌려 약을 했다. 옆집 젊은 남자가 경운기를 밭에까지 끌어다 놓고 농약기계 사용방법을 설명해줘서 익혔지만 조절을 잘못하여 호스가 터지는 사고가 났다. 나는 호스를 잡고 있다가 호스가 터져서 하늘높이 치솟는 농약을 한꺼번에 뒤집어썼다. 당분간 하찮은 병이나 바이러스는 내 앞에 얼씬도 못할 것이다.

가까스로 약을 끝냈는데, 이번에는 노린재를 잡는 트랩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콩 작목반 농가들이 설치한 노린재 트랩은 가격이 비쌌다. 온라인으로 작목반농가들이 사용한 것과 같은 로켓트랩을 구할 수 있었다.

로켓트랩은 맨 위에 태양광 발전 소자가 붙어있고 바로 그 아래는 환풍기가 달려있어서 태양광 전기로 환풍기가 돌아가면서 안에 있는 페르몬 향이 밖으로 멀리 확산되어 퍼지도록 만들어졌다. 개미허리노린재, 갈색날개노린재, 썩덩나무노린재가 이 트랩에서 방출되는 페르몬 향기에 유인당하여 트랩 안으로 들어와 잡히는 것이다.

페르몬 향에 유인당하여 죽는 노린재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을 당하는 셈이다. 수컷의 냄새로 알고 찾아들어갔다가 수컷 엉덩이 한 번 못보고 죽는 처녀 노린재들이 가엽지만, 지들이 콩 꼬투리만 빨아먹지 않았어도 죽음을 면했을 터이니 그게 다 인과응보가 아니겠나 싶다.

노린재 트랩을 설치하는 이유는 콩이 꼬투리를 짓기 시작하면 노린재가 꼬투리를 빨아먹어 콩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노린재가 노리는 것은 콩뿐만 아니라, 단감도 파먹고 사과도 파먹는다고 한다. 근년에 들어서 더 극성인 노린재 때문에 농가들이 비상이다. 옛날 노린재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농사를 망치는 해충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콩은 심기만 하고 잡초만 뽑아주면 되었는데 요즘은 꽃이 필 때 한번, 꽃이 지고 난 뒤에 한번, 두 번은 기본적으로 농약을 쳐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번만 했으니 걱정이다. 대신 노린재트랩을 설치했으니 약은 그만 하자고 했지만 걱정은 남아있다.

약을 한번만 하는 대신 노린재 트랩을 세웠으니 그냥 참아보자고 남편을 말렸다. 조금 덜 먹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노린재 트랩 속에 잡힌 숱한 노린재를 보면서 내심은 걱정이다. 이번에 설치한 친환경적인 노린재 트랩은 신통방통하다. 노린재뿐만 아니다.

한 삼 년 전부터는 갈색 선녀벌레가 산골 풀숲이나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애벌레 때는 노란덩어리 모양으로 가지마다 붙어 있다가 톡톡 튀는데 엄청 빠르다. 그러다 보면 갈색 날개벌레로 변한다. 천지가 다 선녀벌레다. 갈색 날개매미충 이라고 하거나 미국 선녀벌레 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감나무 가지 진액을 다 빨아 버려서 감나무가 죽는다. 방제를 한다고 해도 약을 치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이내 다시 날아와 그대로이다.

이것들은 우리나라에 있던 해충이 아니라 외국에서 목재나 식물을 들여오면서 묻어 들어온 것들이다. 우리 토종 벌레들은 그렇게 극성스럽게 식물을 죽이는 지경에 이르도록 치명적인 벌레들은 없었다. 송충이나 배추벌레 달팽이 따위가 식물을 갉아 먹는 정도이었다. 그런데 외래종 해충들은 번식도 빠르고 발아하여 막 자라는 어린싹을 먹어버려서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외래종 식물도 산골까지 퍼져 들어와서 재래종 식물들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외래종은 생명력도 아주 강해서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 태우거나 말려버리지 않으면 금세 다시 자라나서 작물의 성장을 방해한다. 못된 외래식물과 선녀벌레 같은 외래 해충도 노린재트랩처럼 멋진 발명품이 나와서 모두 없애서 농민들의 고생을 덜어주기를 꿈처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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