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과 준법 사이에서
악법과 준법 사이에서
  • 신영배
  • 승인 2017.09.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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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영배 대 표

박원순 서울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에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 인권변호사였던 그는 책을 통해 헌법과 상식에 맞지 않는 법이나 규정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며 잘못된 법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민주시민의 몫이자 의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00년 총선 때,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을 퇴출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낙천과 낙선운동을 했다. 하지만 낙천·낙선운동은 선거법에 저촉됐다. 선거운동기간 동안 특정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은 현행 선거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악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라며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나는 지금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의 한가운데 서 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의 퇴장을 바라는 온 국민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은 여전히 지역감정과 금권선거로 얼룩지고 있다. 현행 선거법을 위반하고서라도 낙선운동을 벌이려는 우리 입장은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로 재단당하고 있다. 그러나 악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헌법과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지 못하는 법은 고쳐져야 하며 그 노력은 민주시민의 의무가 아닐 수 없다."고 썼다.

그렇다.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바로 우리국민이다. 지난해 우리는 광장에서 ‘촛불혁명’을 완성했다. 잘못된 권력을 우리 손으로 몰아낸 것이다. 박 시장이 원했던 민주시민의 몫은 바로 촛불을 든 시민들의 함성이며 그 에너지를 모아 잘못된 법을 개정하는 행위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4월 고향인 부안 줄포면으로 귀향을 했다. 각박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서 노년기를 보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40여 년 전에 떠났던 고향이었지만 여전히 맑은 공기와 서해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저녁노을, 도시와는 다른 느긋함 등 내 고향 줄포는 그야말로 쾌적한 환경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답고 쾌적한 고향에서 나는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함을 느낀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법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향의 주민들이 기초 질서를 대하는 정서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고향에 돌아와 가장 먼저 만난 문제는 일반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물을 비롯한 각종 생활쓰레기 처리와 운전자들의 자동차 주·정차, 속도 및 신호위반 등 각종 교통법규 위반행위를 손꼽을 수 있다.

농촌지역 주민들의 경우 대다수가 단독주택에서 생활을 한다. 각 세대에서 배출하는 음식물쓰레기는 지자체에서 판매한 전용봉투에 담아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린다. 일반생활쓰레기 또한 전용봉투에 담아 길거리에 내놓으면 청소담당 공무원이 수거를 해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쓰레기처리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가 않다. 농촌에서는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는 쓰레기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마구 버린 쓰레기는 수거 일정이 지켜지지 않아 그냥 널려있기 일쑤다. 특히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눈이 올 경우 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널리고 날려서 엉망이 된다. ‘클린농촌’을 조성해서 도시인들이 찾아오게 한다는 부안군의 바람은 허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부안군 스스로 쓰레기분리수거 입법취지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시골의 교통관련 질서의식은 그야말로 무법지대다.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 양방향과 역방향 주차는 기본이다. 이 때문에 줄포 중심지역을 통과하는 노선버스들이 노선을 벗어나 이면도로를 이용하고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군청이나 면사무소, 줄포파출소의 단속활동은 거의 없다. 법을 지키지 않은 행위가 관행이 돼버린 것이다.

내가 겪는 잘못된 교통관련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줄포와 정읍을 오가는 왕복 4차선 지방도에 설치된 신호등이다. 이 도로에는 부안지역과 정읍지역에 각각 10여개의 신호등이 설치돼 있는데 부안지역의 신호등은 모두 점멸등이다. 반면에 정읍지역은 모두 일반적인 교통신호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점멸등 신호의 경우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나 횡단하는 주민 모두, 신호등을 통과 할 때, 상당한 주의를 한다. 하지만 차량통행량이 현저히 낮은 도로에서 정상적 신호등 규정을 준수하기에는 운전자의 불편이 상당하다. 연이어 있는 신호등이 연동조차 되지 않아 몇 번이고 차를 멈추어 신호를 기다리는 일은 보통의 인내력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신호를 어기고 지나가버리면 뒷맛이 좋지 않다. 물론 사고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악법도 법이다’가 아니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장처럼 악법을 법으로 인정해서 잘못된 법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일이나 그것을 지키려 애쓰는 일은 그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역에 맞는 현실적인 법과 규정을 제정한 후, 그 법과 규정을 지키려는 노력과, 아울러 당국의 철저한 지도단속이 이뤄질 때, 우리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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