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내일에 희망을 심자
전북의 내일에 희망을 심자
  • 신영배
  • 승인 2017.08.3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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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배 대표

어느덧 8월이 저물었다. 그야말로 눈 깜작할 사이에 올해의 2/3가 지나갔다. 덕분에 날마다 비가 내리고 해가 나오던 늦장마도 마침표를 찍는 것 같다. 아침저녁에는 기온이 서늘해지고 이제 ‘가을이구나.’하고 느낌이 와 닿는다. 가을은 초목이 봄여름에 만들어 둔 영양소들을 열매나 뿌리에 저장하고 잎을 떨구어 추운 겨울을 견딜 준비를 하는 계절이다.

풍요로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려던 참에 북한 김정은이 실전용 미사일을 일본 상공을 넘겨 태평양을 향한 도발을 또다시 감행했다.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미국더러 나서라는 제스처 인 듯하다.

한반도 일에 우리 정부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저 미국에 빌붙어 ‘살려줍쇼.’하며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마치 전라북도가 호남의 일부로 간주돼 광주·전남에게 모든 주도권을 내주고 떨어지는 고물이나 주워 먹고 있는 작금의 형편과 흡사한 형상이다.

우리 전북이 지난 농업시대에 누렸던 무한한 경제력을 산업화 과정에서 타 지역에 내주고 남의 눈치나 보는 신세가 된 까닭이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북은 그동안 인재를 키우기는커녕, 아예 인재가 자랄 수 없는 환경과 풍토를 조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은 사람을 키워야 지역도 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에 전북의 인재양성과 관련,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다름 아닌 오늘 35년동안 정들었던 대학 강단을 떠나는 전북대학교 15-16대 총장을 역임한 서거석 교수다. 서 교수는 오랜 대학교수 생활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게 ‘초중등교육의 중요성’이라고 했다.

초중등교육기간 12년에 학생의 인성과 학문에 대한 열정, 적성 등이 자리 잡아져서 대학에 가야 하는데 막연하게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입학하는 바람에 뒤죽박죽 교육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대학에 와서야 진로를 생각하고 학문을 생각하는 교육으로 어떻게 인재가 양성되겠느냐?” “특히 요즘 대학에 오는 학생들은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기조차 힘들어 보여 안타깝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초중등 교육은 기본을 다지고 학문이나 진로에 대한 방향을 정하는 수준에 이르도록 해 학생들이 방황하지 않고 바로 서는 인간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년동안 대학 강단에서 기초교육의 문제점을 보아온 서 전 총장이 정년을 2년 남기고 명예퇴직을 선택한 이유도 총장을 역임한 교수가 정년에 앞서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후배들을 위한 길이 되고, 무엇보다 늘 안타깝던 초중등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이 다급하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대학교육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본을 만드는 교육이야말로 건물의 기초를 다지는 일처럼 중요하다는 평소 그의 지론을 실천하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오랜 강단을 떠나는 동력이 되었을 듯하다. 그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쉽게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고 그걸 풀어내는데 전력을 기울여 기어이 끝장을 보는 추진력이 있다. 그가 학생의 기초교육이 부실하다는 현상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방안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나라의 교육 제도와 법의 규정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가 전북대학의 수장이 되어 얼크러진 실타래 같던 대학 분위기를 일신하고 대학의 위상과 교육의 질을 높였던 일을 생각하면 그의 능력이 전북 교육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데 쓰여 지도록 도민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가 전북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대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눈부셨다. 대학 평가에서 하위에 맴돌던 전북대학의 평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잘 가르치기 위해 강의평가를 강화했고, 교수 연구력 향상을 위해 연구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잘 가르치는 대학’ 1위에 오르고 각종 대학평가에서 국립대 1∼2위에 랭크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전국의 막강한 국공립대학과 경쟁에서 이런 성과를 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옛날 ‘북대(北大)’라는 이름으로 폄훼되어온 학교 명칭이 ‘전대(全大)’로 바뀔 만큼 학교가 일신되었다. 교수들의 연구가 성과를 내서 세계의 학회지에 실리고 서 총장은 전국 국공립대학 총장협의회장과 전국 4년제 대학 총장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교육 분야 위원장 등의 막강한 중책을 맡았다.

학교 운영에 괄목할만한 성과와 함께 그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지독히도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신흥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중학교 매점에서 빵과 간식거리를 팔았는데, 그 때에 신흥고등학교에서는 현 정세균 국회의장이 근로 장학생으로 매점에서 빵을 팔았던 인연이 있어 지금도 서로 그 때 이야기를 하며 교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두 사람 모두 고난과 어려운 형편을 이겨내고 시대가 필요한 인물이 된 사람들이다.

글을 쓰다 보니, 서 전 총장을 추켜세우는 칼럼으로 비쳐질까 두렵다. 그러나 오늘 대학을 떠나는 그를 위하여, 전북의 내일을 목표삼아 열정을 쏟아낼 인물이 절실한 지금, 그 같은 인물이 우리 전북을 위하여 일하게 하는 일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돼 고심 끝에 이 글을 썼다. 그는 전북의 내일에 희망을 심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신영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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