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풍경
놀이터 풍경
  • 전주일보
  • 승인 2017.08.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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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 금 종 / 수필가

우리 집 앞에는 동화세상 같은 아이들 놀이터가 있다. 놀이터에 개구쟁이들이 찾아들면 활기가 돋는다. 어장아장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기부터 중학생쯤 됨직한 소년까지 한데 어우러져 놀이판이 된다. 내 달리고 뛰어오르다 넘어지면서 목청껏 지르는 소리와 깔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뒤섞여 천지를 진동한다. 그럴 때면 아내는 조용히 창문을 내린다. 집안에서 하는 일에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 일도 아니라며 아내를 흘깃한다. 조금은 시끄럽다 한들 어떠랴. 어린이들이 내는 소리야 말로 생기 넘치는 생명과 희망의 소리인 것을.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노라면 나의 젊은 시절 교직 생활 때의 아이들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나를 그 시절로 끌어들이곤 한다.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참새 떼처럼 귀여운 입을 벌려 노래 부르던 아이들, 재미난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련히 그림처럼 떠오른다. 완주군 구이면 태봉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하던 시절에 정아무개라는 아이가 있었다. 성격이 활달하여 잘 웃고 떠들던 아이였는데, 음악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노래할 때면 반주 무시, 음정 무시로 제멋대로 불렀다. 그 아이가 노래를 할 때마다 반 아이들이 발을 구르며 웃고 깔깔대며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어도 아이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언제나 벌떡 일어나 앞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그렇다고 넌 노래를 엉터리로 부른다고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잘한다.’고 칭찬을 하고 박수를 쳐주었다. 자라는 아이의 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장래에 목사가 되고 싶다던 그 아이가 나중에 찬송가는 제대로 불렀는지, 정말 목사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붙임성 있고 명랑하던 그 아이의 천진하던 노래와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놀이터에서 되살아나 들려온다.

 

나는 자연이 내는 소리를 좋아해서 녹음기에 그 소리를 담아 듣기를 즐겼다. 상당기간 내 취미였던 소리 채집은 생활에 쫓겨 그만두었지만, 아름답던 소리들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내가 들었던 아름다운 소리를 가만히 더듬어 본다. 매화꽃이 기지개를 켤 무렵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갈매 빛 가시연 꽃잎에 우두둑 쏴아 폭우 쏟아지는 소리, 한 여름 느티나무가지에서 목 놓아 우는 참매미 소리, 모시옷 다듬는 낭랑한 다듬이 소리, 오색 낙엽이 마당가득 떨어져 구를 때 싸리비로 비질하는 소리, 맑은 샘에서 갓 올라와 서두를 것이 흐르는 개울물 소리, 쓸쓸한 겨울바람이 흔드는 풍경소리 등이다. 계절 마다 곳마다 건져 올린 그 소리들은 잠자는 나의 감성을 깨웠던 소리였다. 하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에 비할 수는 없다.

 

옛사람들은 집안에서 나는 듣기 좋은 소리로 갓난아이 웃는 소리, 자식들의 책 읽는 소리, 길쌈으로 베 짜는 소리를 삼길성(三吉聲)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아기 젖 먹는 소리, 자식 목구멍에 음식 넘어가는 소리, 마른 논에 물 스며드는 소리를 보태기도 했는데 어찌 됐건 아이들이 내는 소리를 천상의 소리로 여겼음은 더 말할 나위없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도 해 맑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이다. 그 소리가 생명의 소리이면서도 웃는 아이의 마음에는 꾸밈이 없고 시기와 질투는 물론 교만이나 위선도 없는, 이슬같이 맑고 백옥같이 깨끗한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놀이터가 부산하다.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잠시 어머니의 손을 놓고 찾아와 놀고 있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는 나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듯하다. 깊은 계곡의 물소리처럼 청아하게 들릴 때가 있는가 하면, 까치들이 떼를 지어 꺅꺅거리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오늘은 병아리나 참새 오십 마리의 소리 같다. 이렇게 놀이터에서 별스러울 것 없이 떠들고 웃으며 내지르는 소리에 남다른 의미를 두는 것은 그 속에는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동심 세계가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그 웃음소리가 삶의 영속성을 보증한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그들이 자라면 나와 같은 부모가 되고 그들의 자녀가 자라서 또 부모가 되어 면면히 이어갈 것이기에 오늘의 역사가 있고 미래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파트 위에 해가 높이 솟았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유치원으로, 어린이집으로 제 갈 길을 가면서 조용해졌다. 그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때 이른 잠자리 한 마리가 찾아와 한가하게 비행하다가 사라진다. 소란하던 놀이터가 적막에 싸여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다. 아이들이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놀이터에 생기를 불어넣을지 그 소란한 듯 생명 넘치는 소리를 나는 벌써 그리워하는 것이다.

백금종/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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