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타작 참에 농주 한 사발
보리타작 참에 농주 한 사발
  • 전주일보
  • 승인 2017.06.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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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금 종 / 수필가

보리밭에 누르스름한 기운이 돋는다. 보리 이삭이 영글어 타작할 때가 되었다는 자연의 신호다. 이맘때면 그때의 뜨겁고 껄끄럽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었던 보리타작 마당이 생각난다. 직장에 다니던 때였지만, 혼자되신 어머니가 허리 펼 새도 없이 바쁘게 일하시는지라 새벽이나 오후, 휴일에 짬을 내서 도왔다. 농사일 치고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있을까만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게 보리타작이다.

6월에 들어서는 무렵이면 뙤약볕 아래에서 보리를 베기 시작한다. 얕은 살갗을 파고드는 보리이삭에 닿지 않게 피하면서 이리저리 쓰러진 보리를 찾아 베노라면 금세 지쳐서 주저앉곤 한다. 그럴 때쯤이면 필요한 것이 새참이지만, 더욱 효과가 큰 것은 농주 한 사발이다. 텁텁한 듯 알싸한 농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팠던 허리도 펴지고 흐르던 땀방울도 거두어져 활기가 솟는다. 다시 낫을 들고 보리를 싹둑싹둑 벨 수가 있었다.

벤 보리는 4,5일쯤 밭에 깔아 놓았다가 어느 정도 마르면 단을 지어서 지게로 나른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보리를 경운기를 이용해서 타작을 한다. 타작이 시작되면 자연스레 분업이 이루어진다. 보리 단을 안아서 탈곡기 앞으로 보내주는 사람, 이를 받아서 기계로 밀어 넣는 사람, 기계에서 나오는 알곡을 가마니에 담는 사람, 마지막으로 알곡을 털고 나온 보리짚단을 모아서 쌓는 사람까지. 모두가 초긴장 상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보리 단을 탈곡기에 넣을 때 주의할 점은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 일이다. 보리 단을 한 번에 몽당 집어넣으면 기계가 멈춰 서 버리고, 적게 넣으면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 보리를 가마니에 담을 때는 구석구석 빈틈없이 잘 채워지도록 흔들면서 받는다. 심지어는 작대기를 꽂아 넣고 흔들면서 담으니 가마니는 항아리처럼 배가 부풀어 오른다. 또 다른 쪽에서는 알곡을 털고 나온 보리 짚을 받아다 동산처럼 쌓는다. 어느 한 곳이 부진하면 전체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없게 되니 한 몸같이 손발을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보리타작에서 뿐만이 아니고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빠는 아빠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엄마는 건강한 가족을 위한 파수꾼으로, 자녀들 또한 그들의 본분을 다하며 돛을 올릴 때 순항의 배를 띄울 수 있으리라.

보리 짚을 쌓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대개 일에 서툰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동산처럼 쌓으려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되는 게 아니다. 미끌미끌한 속성 때문에 서로 붙어있지 않고 한쪽으로 삐져나오려 한다. 그러기에 점점 높아지는 짚더미를 오르려다 넘어지는 일은 다반사다. 건성 건성으로 하다가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와그르르 무너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작은 일에도 신중을 기해야 함은 보리 짚 쌓기나 세상일이나 마찬가지이려니 싶다.

햇볕은 불가마가 무색할 정도로 쏟아지고 땀은 비 오듯 흐른다. 껄끄러운 이삭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속살로 파고든다. 먼지는 눈과 코를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세상의 모든 형벌을 뒤집어 쓴 괴물의 모습이다. 이때도 찾는 것이 바로 농주가 아닌가?

경운기가 숨을 고르고 농군들도 허리를 펴면 어머니의 손길로 빚어진 농주가 나온다. 뚝배기에 가득 부어 한 숨에 마시고 된장을 듬뿍 묻힌 고추를 씹으면 피로가 눈 녹 듯 사라지고 쓰린 고통도 잊혀 진다. 근처 사래 긴 밭에서 허리 펼 틈 없이 땀 흘리는 이웃들을 불러 함께 마시면 그 맛이 배가 되기도 한다.

농주! 이 얼마나 서민적이고 구수한 정이 있는 술인가? 같이 나누어 마시면 모두가 이웃집 아저씨 같이 가까워지고, 마셔서 흥이 나면 한 곡조 뽑을 수 있는 술이다. 농사가 시작되면 농주부터 빚고 농주가 익으면 마을의 인심도 후해 지곤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농사짓는 방법도 많이 변했다. 고향을 찾아가도 보리가 널려있는 전답을 쉬이 볼 수 없다. 보리타작하는 모습 또한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촌로들이 엮어가는 전설로 남아있다. 술이 익어가는 마을의 정취도, 농주를 권하며 나누던 훈훈한 정도 동구 밖 느티나무가지에 매달린 추억이다. 편리를 추구하는 문화는 도시를 거쳐 농촌, 산촌을 가리지 않고 스며들었다. 일손이 급속히 감소하게 되니 더욱 그러 하리라.

가마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장만했던 어머니의 구수한 손맛은 간 곳 없고 편리하게 배달된 음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광주리에 음식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바둑이를 앞세워 들로 나가던 어머니의 모습도 볼 수 없다. 심지어는 농주대신 커피로 피로를 푼다 한다. 농촌에 가더라도 그 옛날의 정취는 간곳이 없고 옛 추억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으니 아쉽고 그리운 마음이다.

일손이 고단할 때 구실삼아 허리도 펴고 잠깐 쉬면서 벌컥벌컥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며 들이켜던 그 농주가 그립다. 농주는 술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정으로 빚어진 사랑이었다.

백 금 종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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