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와 토끼
카나리아와 토끼
  • 전주일보
  • 승인 2017.06.2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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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기술이 미미했던 시절 광부들은 막장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갔다. 유해가스가 차면 카나리아는 노래를 멈췄다. 광부들은 서둘러 갱도를 나와 목숨을 건졌다. 역시 잠수함이 바다 저 깊숙이 들어갈 때 토끼가 함께 했다. 토끼는 수압이 적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인간에게 경고음을 날렸다.

인천에서 17세짜리 소녀가 초등생 여자아이를 유인해 살해하고 잔혹하게 사체까지 훼손했다. 공범도 있었다. 가해자 김양이 문자로 살인을 암시하자 공범 박양(18)은 사체일부를 요청, 전달받은 사체를 유기했다. 지난 23일 공판에서는 김양은 공범 박양이 ‘아이를 죽이고 시체 일부를 가져 오라고 지시’했다고 기존 진술을 바꿨다. 재판은 다시 전개될 예정이다.

어리고 연약한 여성청소년들이 가해자와 공범, 피해자 등으로 뒤엉킨 양상은 사건 자체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분노와 슬픔이 교차한다. 김양과 박양은 동네 친구도 학교친구도 아닌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만난 인터넷 친구다. 이 커뮤니티는 캐릭터를 만들어 상황극 놀이를 통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곳이다.

김양은 학교 부적응으로 자퇴했다. 박양은 부장판사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등 국내 유명 법무법인의 초호화 변호인단 12명으로 출발했던 정도만 알려졌다. 쉽게 회자되는 불우한 청소년들의 불행한 범죄와는 양상을 달리한다. 평범한 소녀들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극단으로 치닫을 때까지 소녀들의 망가진 마음을 안아줄 곳은 없었던 것인가. 정신병, 문제아들이 저지른 천인공로할 범죄로 규정하고 일벌백계해 우리의 분노를 위로받아서 끝날일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도가 다른 수많은 유사 청소년범죄들이 말해준다.

혹시 이들이 우리사회의 병증을 드러낸 경고음은 아닌지, 이 사회의 카나리아나 토끼는 아닌지 냉철히 생각해볼 일이다. 야차처럼 자신의 이익만 좇아야 살아남고 그런 사람이 능력 있는 이로 평가되는 이 치욕의 사냥터에서, 섬세하고 여린 영혼들이 사회의 유해가스와 살인적인 수압에 노출된 파국적 증상은 아닌지. 이 황량한 땅에서 아이들이 숨쉬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 어른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이 아이들이 ‘마녀’의 모습으로 경고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캐릭터 커뮤니티, 고어물이 이 사건에 불을 댕긴 역할이 될 수 있지만 사회관계가 충실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범죄심리학자이기도한 표창원 의원의 분석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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